"세상 사람 다 힘들게 산다.나 때문에 웃을 수 있다면" 생애 첫 기부한 ‘종로할담비’ 지병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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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할담비' 지병수(76)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지난 8일 오후 '할담비' 지병수(76)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지난 8일 오후 2시 종로구민회관 2층 대강당. 종로구가 마련한 어르신 위안 잔치에 ‘종로 할담비’ 지병수(76)씨가 공연에 나섰다. 지씨는 흰색 한복을 차려입고 국악에 맞춰 살풀이춤 공연을 펼쳤다. 이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2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어르신들은 복도까지 가득 채워 쪼그려 앉아 손뼉을 치며 공연을 즐겼다. 노래가 끝나자 지씨는 객석을 향해 큰절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2~3개월만 지나도 저를 안 찾겠죠. 제가 연예인이나 스타도 아니고…불러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거죠.”

공연을 마친 지씨에게 "인기가 높아져서 바쁘지 않으시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선보였다. 지씨의 방송 출연 영상은 유튜브에서 단일 영상으로 약 25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씨가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 숭인동 주민센터 노래자랑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는 평소 즐겨 부르던 이 노래를 불렀는데,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결국 지씨는 숭인동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전국노래자랑' 종로구 편에 참가했다. 지씨는 방송 출연이 부담돼 전날까지 나갈지 말지 망설였지만, 주변의 권유로 결국 녹화에 참여했다. 지씨는 예선을 거쳐 참가한 260개 팀 중 15개 팀에 뽑혀 방송에 나왔다.

“몇 번 섭외하고 말겠지 했는데 계속 (섭외) 요청이 오니 처음엔 의아하더라고요.”

방송 출연 이후 지씨는 '벼락스타'가 됐다. 지상파·케이블 가리지 않고 섭외 요청이 빗발쳤다. 완구점을 운영하는 지인은 안쓰럽다며 생업을 제쳐두고 지씨 매니저를 자처하며 일을 돕고 있다. 지씨는 예능프로그램에도 나갔다. 홈쇼핑 광고도 찍었다. "인기가 식으면 허탈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더니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사는데 나 때문에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요즘도 지씨는 바쁘다. 행사에 자주 초대받는데, 큰돈은 못 번다. 차비 정도만 받거나 공짜로도 공연한다.

“몸으로 봉사만 하다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기부하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씨는 방송 출연료, 광고수입 의 일부를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기부했다. 난생 처음이었다. 그는 tvN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해 72인치 텔레비전을 받아 그것도 기부했다. 종로구가 지난달 말 지씨에게 감사패를 전했다.

지씨가 복지관에 봉사를 다닌 건 2년이 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매일 복지관에 나간다. 오전에 가서 어르신들과 점심을 먹고 오후에 봉사활동을 한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장구치는 걸 돕거나 춤·음악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르신들을 돕는다. 요즘 바빠서 복지관에 자주 못가지만 일주일에 1~2번 간다. "복지사나 어르신들이랑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가는 거지, 큰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해요."

지난달 30일 김영종 종로구청장(왼쪽)이 지병수(76)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종로구 제공]

지난달 30일 김영종 종로구청장(왼쪽)이 지병수(76)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종로구 제공]

그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한 달에 수급비로 52만원을 받는데 이게 수입의 전부다. 월세로 약 40만원을 내고 12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지씨는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이 5명, 누나가 5명이다. 고향인 전라북도 김제에 누나들이 아직 사는데 혼자 사는 지씨에게 쌀·반찬 등을 챙겨준다. 지씨는 미혼이다. 사업하면서 알게 된 양아들 2명이 있다.

그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건 아니다. 어려운 시절에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에는 명동·청담동에서 8년 옷가게를 운영했다. 신촌에서 호프집을 열었다. 이후 국악을 배워 일본으로 건너가 7~8년 공연을 하며 살았다. 그때 돈을 꽤 모았는데 90년대 초에 친척에게 보증을 섰다. 한 달에 이자만 180만원씩 물어가며 버텼지만 결국 재산을 다 날렸다. “그때 일을 원망해봐야 제 건강만 해치죠. 마음을 비웠어요" 지씨는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아프지 않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제 나이가 76살인데 뭘 더 바랍니까.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그저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지금처럼 좋아하는 춤도 추고 노래하며 즐기면서 사는 게 제일 행복한 거 같습니다."
그는 다른 목표가 있는지 계획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이어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불러줄 때까지 노래하고 춤도 추고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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