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일용직 죽음, 안전화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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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10일 김태규씨가 작업하다 추락한 화물 엘리베이터. 김씨는 5층의 폐자재 등을 엘리베이터 안에 옮기다 반대쪽의 열려 있던 문 밖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유족]

지난달 10일 김태규씨가 작업하다 추락한 화물 엘리베이터. 김씨는 5층의 폐자재 등을 엘리베이터 안에 옮기다 반대쪽의 열려 있던 문 밖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유족]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1일 시민단체 ‘일하는 2030’은 고(故) 김태규(25)씨 추락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건설 근로자였던 김씨는 지난달 경기도 수원의 한 공장 신축 현장 5층에서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이후 현장소장 등 2명이 작업장 안전관리 책임(업무상 과실치사 등)을 지고 입건됐다. 사건은 최근 검찰로 넘어가면서 일단락된 듯했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유족에게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태규씨 수원 공사 현장서 사고 #화물 승강기 반대편 문 열려 추락 #유족 “승강기 움직여 현장 훼손” #시공사 “경찰 감식 끝난 뒤 내려”

지난달 10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산업단지 내 공장(지상 1·5층 2개 동, 연면적 2만7670여㎡) 신축현장 고층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김씨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사고현장에는 즉시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수사 과정서 시공사인 E종합건설측의 ‘안전불감’이 드러났다. 당시 김씨는 5층의 폐자재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옮기던 중 반대쪽으로 열려 있던 문 밖으로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닫혀 있어야 할 문은 성인 키 높이 이상으로 열려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가 밑으로 빠진 엘리베이터와 건물 벽면 사이의 틈은 44.5㎝쯤 된다. 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조작자 1명만 탑승이 가능한 화물 엘리베이터(적재용량 300㎏ 이상)에 김씨 외 또 한 명의 작업자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주장에 따르면 김씨는 고층에서 일하는 작업자인데도 현장에서 안전화·안전벨트 등 기본적인 장비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발견 당시 김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안전모는 현장에 남은 것을 썼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열린 문인 만큼 현장소장 등 2명을 입건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사고 원인 조사가 나왔지만 김씨 유족 등은 여전히 의문점을 갖고 있다. 추락한 경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고 현장 목격자 두 명의 증언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김씨와 사고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었다는 A씨는 “자재를 올리는 작업이 다 끝난 뒤 김씨가 구석에 서 있었다. 잠깐 사이에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반면 엘리베이터 밖에서 김씨를 봤다는 B씨는 “마지막으로 본 위치는 (엘리베이터) 가운데였다”고 주장했다. 만약 A씨 말이 맞다면 김씨의 과실도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숨진 김씨의 누나(29)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소 조심성이 많은 태규가 떨어질지도 모를 구석에 서 있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현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건설사 측은 5층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내려 현장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김씨 누나는 “특성화고 졸업 학력으로는 취업이 잘 안 되자 ‘가족들에게 빚지기 싫다’며 건설 근로자 일을 시작한 착한 동생이었다”며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 동생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달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공사인 E종합건설 측은 “경찰에서 ‘감식이 끝났다’고 해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옮긴 것이다. 현장 훼손이 결코 아니다”며 “5층 작업 동선은 직원을 통해 파악한 상태지만 (직접 목격한 게 아니다 보니) 외부에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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