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방화 아니다"…원인 규명 못하고 끝난 KT 화재 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1월25일 서울 마포구 KT아현지사에서 소방당국이 화재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25일 서울 마포구 KT아현지사에서 소방당국이 화재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지난해 11월 통신대란을 일으켰던 KT아현지사 화재에 대해 5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2018년 11월24일에 있었던 서울 서대문구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에 대해 화재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내사종결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 상 출입자가 없고 유증검사에도 인화성물질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방화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약 9시간의 장시간 화재 등으로 인해 통신구 내부가 심하게 소훼돼 구체적 발화지점을 한정하지 못함에 따라 과학적 검증 가능한 발화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13명의 수사전담반을 편성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소방ㆍ한전ㆍ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화재현장조사 3회, 합동회의 2회를 실시했다. 또한 최초 목격자이자 신고자인 A씨(57)를 포함해 당시 실황실 근무자, 건물관리 총괄책임자, 통신구 담당자 등 25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실시했다.

경찰은 방화가능성 뿐 아니라 실화의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에 따르면 화재 당일 통신구 내 작업이나 작업자가 없었으며 현장 주변에 담배꽁초 등 발화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원인이 규명되고 원인 제공한 행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원인 자체가 규명되지 않기 때문에 법리상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25명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람 중 입건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이 지난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에서 최을천 형사과장이 지난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정확한 화재 원인은 규명할 수 없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은 통신구 내부의 전기적 원인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김정현 화재조사관은 “환풍기 제어반 안에서 발열로 인해 시작됐을 가능성을 높다고 보고 있다”며 “자동소화기를 설치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감식을 맡은 국과수 연구원은 “현장 자체가 너무 불에 타서 특징점을 잡아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며 “발화 가능성이 높은 곳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확실히 규명할 만한 원인을 잡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를 통해 법리상의 허점도 드러났다.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는 길이 조건을 충족 못 해 ‘특정소방대상물’에 포함되지 않아 소방기본법상 ‘특별소방점검대상’이 아니다. 법 적용대상이 되는 지하구는 폭 1.8m이상, 높이 2m이상, 길이 500m 이상이어야 한다.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는 폭과 넓이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길이가 112m로 충족하지 못했다.

또한 이 통신구는 통신선만 매설된 지하구로 전기·가스 등과 공동수용된 것이 아니라 ‘공동구’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공동구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동구 관리자의 안전점검 대상에 포함된다.

KT아현지사가 지난 2015년 원효지사 통합하여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해 감독 행정관청의 관리를 받아야 할 C등급 시설이 됐으나 등급을 조정하지 않고 D등급으로 자체 관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D 등급 통신시설은 통신망 백업체계 구축 의무가 없어 화재와 같은 재난에 더 취약하다. 지난해에서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시정 명령을 내려 C등급으로 상향 조정이 완료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책임자의 관리 부실에 대해 이 주 내에 KT 측에 통보할 예정이다”며 “통신구 내 스프링 쿨러 설치 등 재난 대비시설 보완 및 CCTV설치 등 시설보안 강화할 것을 KT와 유관부서에 건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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