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일본산 식품 안전 인정했다더니···일본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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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본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무역 분쟁에서 한국이 예상을 깨고 사실상 승소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일본이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조치가 타당한 것으로 판정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의 한 수산시장의 수산물 원산지 표시다. [연합뉴스]

한국의 일본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무역 분쟁에서 한국이 예상을 깨고 사실상 승소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일본이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조치가 타당한 것으로 판정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의 한 수산시장의 수산물 원산지 표시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과 벌인 ‘수산물 분쟁’에서 패소한 뒤 세계무역기구(WTO)의 판단을 과장 해석해 주장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가 (WTO의) 1심 판단을 근거로 설명한 ‘일본산 식품의 과학적 안전성은 인정됐다’는 내용은 1심 판결문에 해당하는 보고서에는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아사히 "1심 보고서에 내용 없어"…전문가들 황당 #정부 관계자 "이해하기 쉽게 말을 바꿨다" 해명 #'한국 기준 충족 주장도 잘못' 정부 산하 연구소 지적

그동안 일본 정부는 WTO 상고심 판단을 놓고 ‘일본산 식품에 대한 안전성은 인정했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패소 이튿날인 지난 12일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패소 지적은 맞지 않다”며 “(상고심에서도) 일본산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하고,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한다는 1심의 사실인정은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문에 따르면 실제 1심 보고서에는 ‘일본산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일본 정부도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일본 외무성과 농림수산성 관계자들은 “1심이 ‘일본산 식품은 국제기구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출하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을 이해하기 쉽게 말을 바꿨다”고 아사히에 해명했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국제법학자인 나카가와 쥰지(中川淳司) 쥬오가쿠인대 교수는 "일본 기준이 국제기준보다 엄격하다는 것과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여부는 같은 것이 아니다"며 "구차한 설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한다’는 설명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상고심은 “식품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의 양에만 주목한 1심 판단은 의논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도 관련 내용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경제산업성 산하 경제산업연구소의 가와세 쓰요시(川瀬剛志) 연구원(조치대 법학부 교수)은 “명백히 판결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과 마주 보고 23개국과 지역에 남은 식품 수입규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아사히에 말했다.

외무성 관계자도 최근 자민당 모임에 출석해 “한국이 정한 ‘안전성 수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해당 보도에 대해 반박하며 “(정부의 설명은) 간결히 전달한 것. 일본산 식품의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1심 판결 내용은 (2심에서) 취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6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홋카이도 강진 피해 상황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6일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홋카이도 강진 피해 상황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적절한 기준치를 설정해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적절한 출하제한 관리에 의해 일본산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대처를 통해 일본산 식품은 방사능 세슘 농도가 일본 및 한국의 기준치보다 밑돈다는 것을 1심은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급위(상고심)는 이 사실인정을 취소하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스가 장관은 또 “향후 개최되는 WTO 분쟁해결기관 회의에서 1심에서 인정된 내용은 상급위 보고서와 함께 채택될 것”이라면서 “(정부의 설명은) 이같은 내용을 간결히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WTO 상급위 보고서 내용과 괴리가 없다는 뜻인가”라고 묻는 기자 질문에 “그렇다. 자연스러운 해석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상진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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