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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사흘 만에 첫 ‘낙태죄 폐지 법안’…공동발의에 민주당 0명인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헌법불합치' 판결 들은 낙태죄 폐지 찬성 시위자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낙태죄폐지공동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불합치' 판결 들은 낙태죄 폐지 찬성 시위자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낙태죄폐지공동행동 단체 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에서도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 첫 번째 법안의 대표 발의자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다. 이 대표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는 헌재 결정의 취지와 시대 변화에 부응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발의 의원 10명 겨우 채워

그런데 법안 발의의 최소 요건인 의원 10명을 가까스로 채워야 했다. 이 대표를 포함한 정의당 소속 의원 6명과 바른미래당 김수민ㆍ박주현(민주평화당에서 활동)ㆍ채이배 의원,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참여했다. 제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은 없었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 차원에서 논의를 거쳐 별도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는 이유였다”면서도 “민주당의 여성단체 출신 의원들조차 법안 발의에 동의해주지 않아서 고개가 좀 갸우뚱해지긴 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를 따른 법안인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찬반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응 속도의 차이를 주된 이유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헌재 결정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추이를 좀 지켜보고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 내용도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 의원도 “헌재 결정 자체가 매우 파격적이고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앞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혹시나 법 개정을 잘못하게 되면 헌재 결정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대응이 느리다기보다는 면밀히 검토하는 차원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만, 워낙 찬반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 민주당은 보수 정당” 지적도

반면 정의당은 헌재 결정 나흘 만에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속적으로 낙태죄 폐지 법안을 논의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이런 흐름을 예상하고 1년 전부터 개정안을 검토해왔다”며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모자보건법은 아예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합리적인 절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안에서 민주당의 움직임은 진보 성향이라기보다는 보수 성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이정미 대표가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임신부 자신의 ‘자기 낙태죄’와 의료진의 ‘동의 낙태죄’ 규정을 삭제하는 게 골자다. 여성이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를 내포한 낙태라는 용어를 가치 중립적인 ‘임신 중절’로 바꿔 부르도록 했다. 함께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 임신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낙태 대신 ‘임신 중절’로 표현

현행법은 임신 14주를 초과하는 경우 태아나 산모의 건강상태에 중대한 손상이 있거나, 성폭력 범죄로 인한 임신이 인정될 경우 등으로 임신 중절을 제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여기에 임신 유지나 출산 후 양육이 어려운 ‘사회ㆍ경제적 사유’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은 보수 지지층의 대다수가 낙태죄 폐지에 부정적인 점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나 법을 개정하려면 토론회, 공청회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며 “정치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생명과 관계된 문제니까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송희경 의원은 “아직 방향이 결정된 건 없지만, 선진국에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안들도 있기 때문에 이런 해외 사례를 참고해가며 폭넓게 법 개정안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경희ㆍ임성빈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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