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민정라인 왜 이러나"···여당서도 이미선 거부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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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도대체 민정 라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 구하고 검증하기가 어렵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본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이 의원은 11일 “법관은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고위 공직자로 소위 고급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있어 더 조심해야 하는데, 이 후보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여당 내에서 이 후보자 비토론이 확산하고 있다. 전체 재산 42억6000여만원 중 35억4887만원(83.3%)이 주식형태인 것도 낯선데, 이 후보자 본인의 주식 거래 횟수 1220여회, 배우자 명의 4090여회인 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여기에 “재산 문제는 전적으로 남편이 관리했다”고 답해 판사 출신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자유한국당)으로부터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꾸중에 가까운 지적까지 받았다. 그는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적절한 처신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실제 이미선 후보자를 이대로 임명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의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 이 후보자를 임명해선 안 된다고 본다. 여론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자진 사퇴가 최선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 핵심 관계자도 “이렇게 사람 구하는 게 어렵나. 자진 사퇴가 최선이고, 이런 당의 기류가 후보자에게도 전달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여당 내 이상 기류는 전날 인사청문회 때부터 감지됐다. 통상적으로 여당 의원들은 인사청문 후보자들에게 해명 기회를 주는 정도지만, 전날 청문회 때 여당 의원들은 이례적으로 “의혹이 확인되면 사퇴해야 한다”(김종민 의원), “국민 정서상 반하는 점이 있다”(백혜련 의원)고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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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자에 대한 불만은 청와대 민정 라인을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 중 한 명은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왜 이렇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장관 후보자 두 사람이 낙마한 뒤에도 어떻게 바뀌는 게 없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어디서 저런 사람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데리고 왔는지 그 자체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를 두둔하는 의견도 있다. 주로 친문 핵심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의견이 그렇다. 친문 색채가 짙은 지도부의 한 의원은 “주택을 많이 보유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 거래를 많이 했다는 게 왜 죄가 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사고팔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식의 감정적인 접근은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 뿐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인사 과정에서 반대하는 족족 낙마해 ‘데쓰 노트(death note)’라는 별칭까지 얻은 정의당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호진 대변인은 “이 정도로 주식투자 거래를 할 정도면 판사는 부업이고 본업은 주식 투자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라고 비판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등 정의당이 반대한 인사는 줄줄이 자진해서 사퇴하거나 중도 낙마했다.

이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다. 헌법재판소장과 달리 국회 표결이 필요 없어 인사청문 보고서 결과에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는 이 후보자가 전혀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식 취득하는 과정을 포함해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서 “최정호 전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집이 여러 채인 게 국민정서상 문제가 됐으나 주식은 투자 중 하나다. 이해 충돌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자를 추천한 많은 분들이 여성으로서 약자, 소수자 대변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그런만큼 헌재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그런 점에서 적합하다는 검증도 있었다. 후보자 남편의 재산이 많다고 후보자가 낙마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여권에서 조국 민정수석을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시킨다는 ‘차출론’이 나오고 있어서 이 후보자 임명이 강행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내년 총선에서 PK(부산·경남)의 승부수가 될 수 있는 인재영입 카드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야당이 조 수석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 것도 향후 조 수석의 위상이 높아질 것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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