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간 대법관 3명 보좌 '칸트의 시계'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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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8년간 대법관 세명을 보좌한 법원 내 '최고참' 직원인 최덕림(71) 비서관이 10일 퇴임한다.

최 비서관은 1988년 김주한 대법관의 취임과 함께 대법원 별정직 비서관에 발탁된 뒤 지창권.강신욱 대법관 등 검찰 출신 대법관의 비서를 맡았다. 역대 비서관 중 세명의 대법관을 보좌한 경우는 최 비서관이 처음이다.

경남 마산 출신인 최 비서관은 54년 체신학교(옛 체신고)를 졸업한 뒤 체신부(현 정보통신부)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 61년부터 검찰 수사관을 지내는 등 52년을 공직자로 지냈다. 대법관 비서관은 별정직이어서 정년이 없기도 하지만 반 세기 넘게 공직생활을 한 데는 청렴함과 원칙주의자라는 그의 생활신조가 있어 가능했다.

신혼 초 부인이 과일봉투를 만드는 부업을 하는 등 생활고가 심했으나 장남을 법관(최항석 창원지법 판사)으로 키우는 등 1남2녀를 명문대에 보냈다. 그는 "40년 된 전기다리미와 책꽂이를 지금도 사용한다"며 "친.인척의 사건 관련 부탁을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 비서관의 업무는 대법관에게 걸려오는 각종 민원전화를 상대하고, 서류 송달, 국선변호사 선임여부 확인, 판결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일 등이다.

대법관 한 명이 연간 1500건 이상되는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일을 거르면 수백쪽짜리 사건기록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는 "목수 혼자서 집을 짓지 않듯이 판결도 대법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사명감 때문에 대법원 재직시 그의 퇴근시간은 매일 밤 9~11시였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칸트의 시계'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일 같은 시각 산책을 했다는 독일 철학자 칸트처럼, 일년 365일 휴가도 없이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일정한 시간에 사무실을 나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은퇴 후 그동안 못 가본 설악산 등 국내 명승지를 여행할 계획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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