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빈, 사망 전날 술자리···삐뚤어진 글씨로 쓴 유서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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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송명빈(50) 마커그룹 대표가 올초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경찰의 2차 출석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송명빈(50) 마커그룹 대표가 올초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경찰의 2차 출석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6장 유서 중 한장은 투신 화단에서 발견

‘직원 상습 폭행’ 의혹을 받는 송명빈(50) 마커그룹 대표가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일인 13일 투신 사망했다. 송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날 오전 4시 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아파트 고층에는 송 대표의 자택이 있다. 인근을 지나던 주민이 “사람이 쓰러져 있다”며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송 대표의 숨은 이미 멎은 상태였다. 호흡·맥박과 심전도 반응도 없었다. 송 대표 옆 화단의 땅은 충격에 움푹 파여 있었다. 화단 현장에서는 유서가 한장 발견됐다. 송 대표 자택에서도 5장의 유서가 추가로 나왔다. 유서에는 주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심경을 반영하듯 글자 크기와 간격이 삐뚤삐뚤 일정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이 유서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경찰에 전해왔다”고 말했다.

영장심사 앞두고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자리

송 대표는 전날 오후 10시 30분까지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귀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집에는 노모와 자녀 2명만 있었다고 한다. 송 대표가 집으로 돌아갔을 당시 부인은 집을 비운 상태였다. 노모는 송 대표가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지만, 이날 오전 2시 30분쯤 방에 누워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봤다고 한다.

경찰은 송 대표가 스스로 투신한 것으로 결론 내고 수사를 마무리 중이다. 유족의 뜻에 따라 송 대표 시신의 부검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가 지난해 5월 21일 서울 강서부 본사에서 직원의 머리를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경향신문 제공)]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가 지난해 5월 21일 서울 강서부 본사에서 직원의 머리를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경향신문 제공)]

"누구나 부끄러운 과거와 화해할 권리가 있다"

송 대표는 지난해 7월부터 ‘디지털 소멸’ 전문 기업인 마커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잊혀질 권리’를 주창한 디지털 소멸 분야의 권위자다. 마커그룹 역시 이 분야 서비스를 제공했다. 송 대표는 2015년 3월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라는 저서를 발간해 주목 받았다. 책에는 ‘누구나 부끄러운 과거와 화해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2일 송 대표는 회사 직원 양모(34)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 등으로 고소당하면서 ‘제2의 양진호’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양씨는 2016년 3월부터 3년여간 마커그룹 사무실에서 쇠파이프와 각목, 구둣주걱 등으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송 대표가 둔기로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파만파 커졌다. 경찰은 마커그룹 사무실과 송 대표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송 대표는 양씨가 자신의 배임ㆍ횡령 혐의를 감추려 폭행 증거를 수집했다고 강조했지만, 여론은 돌아서지 않았다.

경찰 '공소권 없음'으로 직원 폭행사건 송치 예정

그 사이 송 대표는 상습특수폭행·특수상해·공갈·상습협박·강요 등의 혐의를 적용받는 피의자가 됐다. 구속영장도 청구돼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심사를 통해 구속 여부가 판가름난다. 하지만 송 대표는 법원 출석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매우 안타깝다”며 “무리한 수사가 진행된 것도 아니고, 문제 될 만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송 대표가 사망함에 따라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고양=김민욱·남궁민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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