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여성단체에 3억 손배소…여성단체 “백래시 중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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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EPA=연합뉴스]

김기덕 감독 [EPA=연합뉴스]

김기덕 감독이 영화계 '미투'와 관련해 여성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계는 "피해자와 정의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7일 여성계 등에 따르면 김 감독은 지난달 12일 서울여성민우회를 상대로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자신을 성폭력 범죄자로 낙인 찍어 영화 개봉이 취소되는 등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김 감독은 소장에 "시민단체의 명백한 불법행위로 공개적인 명예훼손을 당하고 있다"고 적었다.

앞서 지난 2월 민우회는 제29회 일본 유바리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김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에 개막작으로 선정되자 주최 측에 '김기덕 감독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초청을 취소해달라'는 성명을 냈다. 주최 측은 김 감독을 영화제에 초청하지 않았다. 다만 김 감독 영화는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여성단체들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 감독의 소송제기에 대해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피해 증언에 한마디 사과나 성찰도 없이 역고소로 대응하는 행보에 분노한다"며 "미투 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공대위는 "김 감독은 "민우회 때문에 영화의 해외 판매와 개봉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성평등한 영화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한 이들의 상식적인 열망으로 이뤄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조차 하지 않으며, 심지어 피해자와 진실을 규명하려는 언론과 단체를 고소하는 행위는 스스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김 감독의 행위는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백래시"라면서 "성폭력 가해자들의 한심한 행동을 복제한 듯한 김 감독의 행보가 매우 놀랍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책위는 김 감독이 베를린영화제, 시체스영화제 등 지속해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 감독의 성추문 의혹을 보도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PD수첩 제작진도 참석했다. 박건식 PD는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 영화계가 좁아서 금방 소문이 나기 때문에 감내하고 있어서 그렇지, 유명한 배우도 있다"고 했다.

한편 김 감독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 촬영현장에서 여성 배우의 뺨을 때리고 협의 없이 남성 배우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피소됐다. 지난 1월 검찰은 이 가운데 폭행 혐의만 인정해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강제추행치사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은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와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MBC 'PD수첩'을 각각 무고죄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1일 허위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며 여배우와 'PD수첩' 제작진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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