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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고온가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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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중 ‘수소 생산 구성 및 공급 목표’라는 게 있다. 2040년에 부생(副生)수소와 추출수소·해외생산으로 70%를 채우고, 나머지 30%를 수(水)전해로 채워 총 526만t을 채운다는 구상이다. 부생수소는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추출수소는 천연가스(CH4) 개질을 통해 나오는 수소를 말한다. 수전해란 물(H2O)를 분해해서 수소(H2)를 만드는 방식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이 셈법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전기를 생산할 연료전지에 쓸 수 있는 국내 부생수소는 약 10만t. 2040년 기술발달로 수전해가 가능하다 해도 158만t(30%). 그럼 나머지 68%(358만t)는 해외에서 들여온 천연가스를 이용하거나, 수소 그 자체를 수입해야 한다. 수소 생산에 어마어마한 외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부생수소 10만t으로 굴릴 수 있는 수소차가 50만대 정도라니,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30년대가 되면 수소 수요가 본격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관료들의 고뇌가 깊어간다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사실 대안이 있다. 청와대도 부처도 정말 대안을 모르는 건 아니다. 현 정부가 맥을 잇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시작했던 수소생산 원자로라 불리는 ‘고온가스로’가 그것이다. 고온가스로는 플랜트 규모로 7개만 있으면 연간 100만t의 수소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 그것도 온실가스는 전혀 없이. 경제성 있는 수전해 기술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수소경제의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로드맵 어디에도 고온가스로를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탈(脫) 원전’이 있으니, 어느 관료가 감히 원자로의 한 종류인 고온가스로를 언급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공약에도 없던 수소경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 대통령 시절 하고는 싶었으나 여건이 맞지 않아 못했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있게 됐다. 다행인 것은, 10여 년 전 시작한 고온가스로 연구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 원자력연구원에는 지금 20명의 연구 인력이 고온가스로개발부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기술을 진화시켜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혼이 난 일본조차도 수소경제로 이행을 위해 2025년에 고온가스로 실증로(實證爐) 운전을 시작한다. 공허한 명분을 부여잡고 망설일 것인가, 실리를 취할 것인가.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의 말처럼 탈핵은 정치적 구호였지, 정책적 구호는 아니었지 않나.

최준호 과학&미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