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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고종 장례 재현 논란의 의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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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31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종 장례 재현 행사를 기획했다가 여러 역사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비판을 종합하면 이렇다. ‘고종의 장례가 사람들이 군집하는 계기는 되었으나, 3·1운동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일제로부터 독립한 민주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으며, 따라서 전제군주에다가 무능과 부패로 망국의 원인을 제공한 고종을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3·1운동은 학생·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파업 등을 병행한 대규모 노동운동·사회운동이기도 했고, 단순히 ‘조선 vs 일본’이 아니라 ‘민중 vs 지배권력’의 성격이 강했다. 조선 민중은 구한말 서양 여행자들이 증언할 정도로 심각한 관료들의 착취와 왕조의 무능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처럼 시민의 손으로 구체제를 뒤엎을 기회가 없이 외세의 손에 왕조가 무너졌다. 근대 사상의 전파로 민중이 자유와 권리에 눈뜨게 되었지만, ‘윗대가리’만 조선왕조에서 일제라는 외세로 바뀌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3·1운동은 근대 민주국가를 세우려는 주체적인 노력과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권력에 대해 폭발한 분노였다. 이것은 3·1운동을 촉발한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에 잘 드러난다.

“우리 겨레에게는 대소정권,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 심지어 종교의 자유, 기업의 자유까지도 적잖이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모든 기관이 조선민족의 인권을 침해하며 공공의 이익에 우리와 일본인 사이에 우열의 차별을 두며 일본인에 비하여 열등한 교육을 실시하여서 우리로 하야곰 (중략) 영원히 국가 생활의 지능과 경험을 얻을 기회를 얻을 수 없게 하니.”

2·8독립선언서는 또한 “비록 오랜 전제정치의 해독과 경우의 불행이 우리의 오늘로 이르게 하였다 하더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선진국의 본보기를 따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다. 여기에는 조선왕조를 미화하는 복고적 민족주의가 아닌 새로운 민주국가에 대한 포부가 드러난다.

사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세계시민주의적 사회주의자도 많았다. 이들 다수가 해방 후 북한으로 갔는데, ‘인민공화국’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이씨 왕조를 김씨 왕조로 바꾼 전체주의 시스템을 보게 되었고 비극적으로 숙청되었다. 이제 이러한 운동가들, 또 민족주의를 넘어선 3·1운동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해볼 때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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