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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미세먼지 빈부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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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산신령: 이 한파가 네 것이냐. /한국인: 아닙니다. 시베리아 것입니다. //산신령: 그럼 이 미세먼지가 네 것이냐. /한국인: 아닙니다. 중국 것입니다. //산신령: 그렇다면 이 폭염이 네 것이냐. /한국인: 아닙니다. 북태평양 것입니다. //산신령: 착한 한국인이구나. 세 개 다 가지도록 하거라.’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에 빗댄 ‘산신령과 한국인’이란 우스갯소리다. 지리적 위치로 한파와 미세먼지·폭염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희화했다. 태풍이 남태평양의 것이라고 주장해 산신령에게 태풍까지 추가로 받아온 더 착한 한국인 버전까지 있다.

산신령의 선물(?) 중 가장 괴로운 건 미세먼지다. 미세먼지의 농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지난 1일 세종과 대전·광주 지역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관측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중국 베이징과 산둥(山東)성의 수치를 능가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나쁜 공기를 전염병의 온상으로 여겼다. 그의 생각은 ‘미아즈마(miasma·오염)설’로 이어진다. 나쁜 공기가 체액의 균형을 깨뜨려 질병을 유발한다는 이 가설은 19세기까지 전염병을 설명하는 전가의 보도로 쓰였다.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전염병의 원인은 아니지만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13년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폐포까지 도달해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보고서에서 한국이 대기오염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2060년 인구 100만명당 조기 사망자 수가 1109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0년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각종 경고에도 정부 대응은 미세먼지만큼이나 답답하다. 재난상황에 준해 대처하라는 대통령의 주문도, 뒤늦은 비상저감조치도, 인공강우 실험도 공허하게 들린다. 미세먼지의 중국 기여분을 추산하기 어렵다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국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다. ‘임기 중 미세먼지 30% 감축’을 내건 공약이 무색하다.

산신령과 독대는 언감생심. 이민을 갈 수도, 숨쉬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지만, 마스크로 무장하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는 정도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몇백만원짜리 공기청정기에 10만원이 넘는 마스크까지 등장했다. 하다 하다 이제 ‘미세먼지 빈부격차’까지 겪게 됐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