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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건 오프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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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4년 전 이른바 ‘김영란법’ 논란이 뜨겁던 즈음, 두 명의 정치인을 만났다. A는 찬성론자, B는 반대론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의 논리를 듣고 싶었다.

찬성론자라 알려졌던 A는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와 지연·혈연주의를 깨야 한다고 했다. 진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은데, 권력자 주변의 파워엘리트를 통해 청탁할 수 있다는 인식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대화 말미에 A는 예상 못 한 말을 했다. “이 기자, 이건 오프(더 레코드)인데 말이야. 경제가 걱정이야. 우리 지하경제 규모가 상상 이상이거든. 선물 가액을 제한하면 당장 서민이나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줄 수 있어요. 경제를 생각하면 김영란법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야.”

반대론자로 급부상하던 B는 왜 ‘김영란법’을 제정해선 안 되는지 설파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 법 위반인지가 모호한 데다, 국민 청원권이 제한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은 국민의 고충을 해결할 의무가 있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나 몰라라 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대화가 끝날 때쯤 B 역시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이 기자, 이건 오프(더 레코드)인데 말이야. 내가 강경 반대론자로 알려진 모양인데, 사실 이 법 디테일은 잘 몰라. 그냥 총대 멘 거지. 일단 뭐 새로운 규제를 만들면 없애기 힘들잖아. 김영란법에 기자도 넣자고 한다며? 이런 거 만들면 피곤해지지 않겠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법 위반 여부가 모호해 법의 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요즘 밥 먹고 술 마실 때 눈치 안 본다. 딱히 단속도 안 하는 법을 누가 지키느냐”고 말한다. 법 제정 주역이던 김기식 의원은 지난해 금감원장 취임 14일만에 사임했고, 김영란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최근 책을 쓰겠다며 현직에서 조용히 은퇴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두 명의 정치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건 그들이 말한 ‘이건 오프인데’ 때문이다. 찬성론자던 A는 부작용을 걱정했고, 반대론자라던 B는 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정치인이 겉으로 보여주는 ‘입장’은 얼마나 속내에 부합할까. 국민은 정치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둘 중 한 명은 지난 27일 한국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그가 누구인지, 선거에서 당선됐는지…. 이건 오프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