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내가 국가다” 발언 논란…“루이14세냐” 비판 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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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EPA=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대 의혹으로 떠오른 ‘노동통계 부정 사건’을 추궁하는 의원에게 “내가 국가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달 2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나왔다. 이날 출석한 아베 총리에겐 통계 조작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고, 입헌민주당 소속 나카스마 아키라(長妻昭) 의원은 “통계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다루기에 따라 국가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국가적 위기 여부를 물었는데, 내가 국가다(私が国家ですよ)”라고 답을 했다. 이어 아베 총리는 “총리에게 국가의 위기라는 심각한 발언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설명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같은 발언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아베 총리에게 비난이 쇄도했다. 현지 SNS엔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법 위에서 말하고 있다”, “아베가 총리인 것이 국가의 위기다”, “이런 위험한 생각으로 국가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걱정된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또 일본 네티즌들은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던 프랑스 루이 14세를 언급하며 “아베는 21세기의 루이 14세”라고 비웃고 있다.

아베 총리가 통계조작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아베 총리는 역시 통계 조작을 추궁하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그중 국민민주당의 아다치 신야(足立信也) 의원은 아베 총리에게 특별감찰위원회의 보고서를 읽었느냐고 물었다. 아베 총리는 “읽지 않았다”며 “비서관에게 개요만 보고받았다”고 답했다. 이에 아다치 의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중요한 일인데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 순간 아베 총리의 문제 발언이 나왔다. “총리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다. 매일 다양한 보고서가 올라오기 때문에 정독할 형편이 안된다”고 강변한 것이다.

이때도 일본 네티즌은 발언을 문제 삼았고, “총리가 신이냐”는 조롱도 쏟아졌다. SNS에선 ‘#삼라만상담당대신(#森羅万象担当大臣)’이 인기 해시태그로 떠올랐다.

한편 아베 내각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은 ‘노동통계 부정 사건’은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조사해 작성하는 ‘매월 노동통계’ 작성 방법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노동자 500명 이상의 사업장은 전수 조사를 해야 하는데, 2004년부터 도쿄도 내에서는 약 3분의 1만 조사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통계가 왜곡됐고,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고용보험금 등 2000여만 건, 최소 530억엔 (약 5300억원)이 적게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통계가 잘못됐다는 게 확인된 뒤 2018년 6월 임금상승률은 3.3%에서 2.8%로 수정됐다.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 운운했던 ‘아베노믹스’ 고용정책 성과가 부풀려졌던 셈이다. 정부 통계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는데도, 국장급 정책통괄관은 경질됐을 뿐 주무 장관인 후생노동상은 거센 경질 요구 속에서 자리를 지켜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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