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1.08인구재앙막자] 커피내기 포켓볼 언니들 어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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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다섯 살 때쯤인가…목욕탕에서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아직 팔팔할 텐데…. 왼쪽 다리가 아프니까 많이 움직이는 건 못해. 따롬('알까기' 비슷한 방식의 미니 포켓볼)이나 맷돌 체조(노인용 체조) 같은 걸 주로 하지. 치매 예방에 좋대."(한옥희 할머니.73.서울 상계1동)

"난 포켓볼이 참 재밌더라고. 복지관 프로그램은 오전 10시 넘어서 시작하지만 매일 아침 포켓볼 치려고 서둘러서 와. 포켓볼은 인기가 많아서 9시 전에 오지 않으면 치기 힘들거든. 노래 시간도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한승분 할머니.70.서울 중계2동)

"사실 전 아직 젊잖아요. 그래서 '노인복지관'에 다닌다는 게 좀 그랬는데, 언니들 때문에 와보니 에어로빅, 차밍 댄스, 다이어트 댄스, 리듬 체조 같이 저처럼 젊은 노인이 할 게 더 많더라고요. 언니들이랑 거의 따로 놀게 된다니까요."(한승순 할머니.62.서울 장위3동)

서울 하계동의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한씨 세자매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복지관 '터줏대감'인 옥희 할머니를 비롯, 승분.승순 할머니도 몇 년째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복지관에서 함께 생활하는 자칭 '복지관 매니어'들이다. 승순 할머니는 스포츠댄스 '특강' 을 받으러 토요일에도 나온다.

승순 할머니는 "5남매 중 오빠 둘은 먼저 세상을 뜨고 언니들만 남았다"며 "나이가 들면서 언니들이 좀 더 자주 보고 싶어 복지관까지 따라와 봤던 건데 이젠 내가 제일 열심히 다닌다"고 말했다.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지만 세 자매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2층 '카페'에 어김없이 모인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밤새 일어난 일들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로를 챙기며 건강하고 즐겁게 늙어가는 세자매를 모두들 부러워한다. 사실 세 자매가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산을 오르며 우애를 다져온 지도 벌써 20년이 돼간다.

"한 달에 한 번 우리가 '단체'로 빠지는 날엔, 다들 '세 자매팀이 또 산악회 가는 날이구나'하고 알 정도야."(승분 할머니)

이들은 틈틈이 자원봉사 활동도 열심이다. 다리가 불편한 큰언니는 복지관 내에서 무료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식당을 안내한다. 둘째 언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자원봉사차량을 이용,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막내 할머니는 복지관 청소와 카페 정리를 돕고 있다.

세 자매 모두 자녀를 분가시키고 부부끼리 따로 살고 있단다. 남편이 아직 현업에 있다는 막내 할머니를 제외하고 두 언니는 남편과 같이 복지관에 다녀보려고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 술 마시거나 산에 다니는 게 더 좋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라도 이렇게 즐겁게 다니는 게 자식들한테도 좋은 선물 아니겠느냐"며 세 자매는 환히 웃었다.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변선구 사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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