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으로 중병 앓는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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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출부진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5월 중 무역수지는 또 다시 적자를 기록, 3월 이후 3개월째 마이너스 상태인데다 적자폭은 더욱 커져 연중누계로도 적자로 반전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올 들어 5월말까지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6.7% 증가한 2백37만7천2백만 달러에 그친 반면, 수입은 19.2%나 늘어난 2백37만8천3백만 달러를 기록, 무역수지는 1천1백만 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물론 5월 중 LC내도증가율이 16.7%로 호전기미를 보이고 있고 노사분규가 진정될 하반기에 수출이 다소 회복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수출목표 7백억 달러는 물론 한차례 축소 조정한 6백70억 달러 달성도 어려운 형편이다.
수출부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현상으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화절상이란 외우에 노사분규라는 내환이 겹친 구조적 중병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올 들어 5월말 현재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절상률은 2.6%에 불과하지만 87년 말 대비로는 18.8%나 절상되었다.
원화절상 초기에는 수출가격 인상으로 수출금액이 증가하였다가 점차 수출가격인상 둔화와 수출물량감소 본격화로 수출증가율이 대폭 둔화된다는 이른바 J커브 효과가 위력을 발휘, 올 들어 4월말 현재 대미수출이 전년동기대비 0.8% 증가에 그친 61억4천8백만 달러에 머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달러화의 엔·마르크화 등에 대한 절상에 따른 원화의 동반절상으로 원화의 이들 통화에 대한 절상률이 87년 말 대비 일본 엔화에 대해서는 37.3%, 서독 마르크화에는 48.5%, 프랑스 프랑화에는 무려 49%나 절상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올 들어 4월말 현재 대EC수출은 7.6%나 감소한 23억3천백3만 달러, 대일 수출은 14.7%의 소폭 증가에 그친 40억9천7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게다가 고질적인 노사분규는 원화절상에 의한 수출부진을 가속화시키는 악역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노사분규는 5월말 현재 5백12건이 발생, 4백16건이 타결되는 진정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동안의 수출차질액은 10억3천8백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자동차부품업계·금성사·금호타이어 등의 장기분규는 신발·완구·섬유 등 노동집약적인 한계 산업의 수출부진에 중화학제품의 수출부진을 보태주고 있다.
자동차수출은 4월말 현재 17.9% 감소한 8억8천8백만 달러에 그쳤으며 3월까지 6.8%의 수출증가율을 보이던 가전제품은 4월 들어 12.5%의 감소추세로 돌아섰고 타이어 역시 16.4%의 증가세가 36.8%의 감소세로 반전했다.
또 하나 심각한 현상은 노사분규로 인한 내수물량의 부족을 수출물량으로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철근생산의 12%를 담당하는 강원산업의 노사분규로 인천제철 등 관련업계의 수출물량을 내수로 돌리는 등 철강·시멘트 등에서 수출여력이 줄고 있다.
한 마디로 수출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데다 수출할 물건조차 부족한 상태다.
그러나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 같은 수출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인데도 정부가 내놓을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환율문제만 해도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이미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도 미국의 절상압력이 계속돼 불안정한 상태이고, 엔·마르크화에 대한 동반절상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인 상태다.
또 노사분규 피해에 대한 국민적 합일점을 찾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1조3천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어 국민의 세금으로 정상화 계획을 모색하고 있는 대우조선에서조차 임금인상을 둘러싼 분규가 일고 있는 것은 노사분규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으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출을 살리기 위해 그 동안 써온 금융지원 등 수출촉진책이라는 것도 안정기조유지라는 또 다른 정책목표와 대외 통상마찰유발 등에 발이 묶여 처방이 어려운 실정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무역금융 융자단가를 현재의 달러당 4백50원에서 5백30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으나 통화증발과 인플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제동이 걸려있는 것은 정책수단의 선택 폭이 얼마나 좁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수출문제에 대한 해결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수출이 무너질 경우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온 국민의 이해와 자각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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