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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경수 법정구속…오직 법리만으로 진실 밝혀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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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7년 대선 전후와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벌어졌던 ‘민주당원의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 사건’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이 공모해 저지른 중대한 선거 범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은 어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김 지사를 전격 구속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지사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는 취지다. 현직 도지사의 구속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그 자체로 참담하기 짝이 없다. 정치적 파장도 결코 작지 않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한 것으로 사법적 결론이 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

대통령 최측근의 여론조작 사실로 #‘국정원 댓글’사건 악몽 재현 우려 #적폐 판사 프레임으로 호도는 곤란

이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성창호)는 김 지사에게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익범 특검이 기소한 거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범행 공모와 관련해 재판부는 ▶김 지사가 드루킹  김씨 등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의 ‘킹크랩’ 프로그램을 이용한 조직적 댓글 작업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김씨가 김 지사의 동의를 받고 댓글 조작에 착수했으며 ▶김 지사 역시 드루킹의 댓글조작 범행과 순위조작에 가담했다고 봤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선 “김 지사가 정권 창출을 위해 드루킹에 의존했으며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여론을 주도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이날 재판부는 드루킹  김씨에게는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김씨의 행위는 온라인상 건전한 여론 형성을 심각히 저해하고 유권자 판단 과정에 개입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목적을 위해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직(일본 센다이의 총영사직)까지 요구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가 김 지사에게도 실형을 선고한 것은 증거와 법리에 입각한 결론으로 보인다. 이 중 정부·여당에 가장 심각한 대목은 2017년 대선 과정에서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의 실체와 함께 김 지사가 정권 창출을 위해 드루킹을 이용하고 의존했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문 대통령을 보좌하며 정권 교체에 기여했던 최측근의 선거 부정이 사실이라면 향후 대선의 공정성은 물론 대선 결과에 대한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를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판결 직후 김 지사는 변호인을 통해 “진실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하겠다. 진실의 힘을 믿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문제는 입장문 안의 내용이었다. 거기엔 “재판장이 양승태(전 대법원장)와 특수관계라는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했는데 재판 결과를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고 했다. 이것은 ‘적폐 판사에 의한 유죄 선고’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된다. 아무리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해도 부적절한 처신이다. 실제로 법정에선 일부 김 지사 지지층이 성창호 부장판사를 겨냥해 “양승태 키즈 판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사법농단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라고 유감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성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비서실에 2년간 파견근무를 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그는 법관으로서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법 이론에도 해박해 엄정한 판단을 내리는 판사로 평이 나 있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등에 유죄를 선고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념적 접근으로 재단하는 시도는 온당치 않다.

김 지사는 이번 1심 판결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끝은 아니다.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다. 판사를 탓하지 말고 법리를 통해 진실을 다툰 뒤 이기든 지든 승복하는 게 공인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