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저임금·탈원전만큼은 방향 틀라는 상공인들의 읍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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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대화는 기업의 현장 애로를 듣는 자리였던 만큼 현안이 크게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비공개 회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런 기대는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참석한 경제인 130여 명 중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지역 상공인이 절반을 넘는 67명에 달했는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산업 현장의 어려운 현실을 전하며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해법을 호소했지만 대통령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 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말초신경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이 내놓는 제품의 부품을 생산하는 산업의 주역이고 근로자의 99%를 고용하고 있어 경제 정책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지역 상공인들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최저임금과 탈원전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이재하 대구상의 회장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무리하게 지속하면 우리 경제에 심각한 왜곡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하고 대신 답변에 나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현장 목소리를 외면했다. 탈원전 역시 요지부동이었다. 한철수 창원상의 회장이 “신고리 5, 6호기 납품이 끝나자 일거리가 없어 원전 관련 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있다”고 읍소했지만 문 대통령은 “정책 중단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은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성장률이 세계 평균에 1%포인트 뒤지고, 지난해 3분기 실업률이 17년 만에 미국보다 높아진 이유가 무엇이겠나. 경제 원리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정책 역주행의 부작용 아니겠나.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그제 니어재단 시사포럼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실사구시가 필요하다”고 호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가 잘되길 바란다면 청와대는 현장의 애로부터 귀를 더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