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복 소방관들 불길 보자 맨몸으로 뛰어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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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안전센터 소속 소방관(사진 노란 원)이 8일 오후 인천 송현동 열쇠점포에서 화재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건물 소화전 소방호스를 이용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인천 중부소방서 제공]

송현안전센터 소속 소방관(사진 노란 원)이 8일 오후 인천 송현동 열쇠점포에서 화재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건물 소화전 소방호스를 이용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인천 중부소방서 제공]

퇴근 후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소방관들이 인근 상가에서 불이 나자 불길을 잡고 손님들을 대피시켜 화제다. 이들은 헬멧과 방화복도 없이 맨몸으로 불길에 뛰어들었다. 패딩을 입고 있던 이들도 있었다.

화재는 8일 오후 8시11분 인천 동구 송현동 열쇠 제작 점포에서 발생했다.

50㎡ 남짓한 점포에서 시작된 불은 바로 옆 8층 상가건물로 번질 기세였다. 당시 이 건물 안에는 PC방·노래방·당구장·독서실 등에 100여명이 있어 불이 건물로 옮겨붙을 경우 대형 인명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퇴근 후 귀가하던 인천 중부소방서 송현안전센터 정기영 소방위가 화재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정 소방위는 곧바로 건물 1층 소화전을 찾아 소방호스를 꺼내고 진화작업을 벌였다. 행인들에게는 119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하고, 송현안전센터 동료에게도 전화해 지원을 요청했다. 한 손으로는 진화작업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를 한 셈이다.

정 소방위는 9일 C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막내딸이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돼 자리를 빨리 떴는데 집에 가다 몇몇 시민들이 안쪽으로 시선이 향해 있어 보니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마침 화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던 동료 6명이 밥을 먹다 말고 한달음에 달려와 진화작업에 동참했다. 정 소방위는 “동료 6명이 전화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초동대처가 원활하게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소방위에 따르면 이들 일부는 옆 건물 3∼4층으로 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그 층의 소화전 방수 호스로 열쇠점포를 향해 물을 뿌리며 화재 확산을 막았다. 나머지는 건물 내 PC방·노래방 등을 돌며 신속한 대피를 도왔다.

밥을 먹다 현장으로 급하게 달려왔기에 소방관들의 ‘작전 회의’는 따로 없었으나 호흡은 완벽했다. 불은 15분만인 오후 8시26분쯤 완전히 꺼졌다. 이 불로 열쇠점포 주인 이모(81·여)씨가 발등에 열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귀가하는 등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정 소방위는 “임무 부여를 굳이 하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을 찾아 빠르게 움직였던 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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