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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한 스푼]84년 南北 ‘가짜 기자’ 소동…급감한 남북 교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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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0월9일 일본 도쿄에서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 부녀가 상봉하는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1964년 10월9일 일본 도쿄에서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 부녀가 상봉하는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도쿄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64년 10월9일 일본 도쿄. 북한 여자 육상선수 신금단(당시 26세)은 쓰린 마음을 안고 북한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400mㆍ800m에서 두 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던 그였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미등록 대회 참가를 이유로 도쿄 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짐을 꾸리던 신금단에게 귀가 번쩍 트이는 얘기가 들려왔다. 신금단을 응원하기 위해 남한에 살던 아버지 신문준(당시 49세)씨가 극비리에 딸을 찾아온 것이었다. 부녀는 극적으로 만났지만 눈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오마니와 동생들은 모두 잘 있어요”(신금단)
“나도 서울에서 잘살고 있단다”(신문준)

총련계 청년들이 금단을 양팔로 잡아끄는 바람에 부녀의 상봉은 7분 만에 끝났다.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고 ‘눈물의 신금단’이라는 노래까지 유행했지만, 신금단과 아버지 신문준은 다시 얼굴을 보진 못했다. 북한은 체제가 흔들릴 것을 두려워했고, 남한 정권은 반공 이념이 느슨해질 것을 우려해 이산가족의 상봉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1962년 모스크바 국제육상대회 여자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북한의 육상 스타 신금단(왼쪽).[연합뉴스]

1962년 모스크바 국제육상대회 여자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북한의 육상 스타 신금단(왼쪽).[연합뉴스]

80년대에도 남북관계는 소원했다. 그 당시 남북회담이 열리면 회담장에는 가짜 기자들로 가득 찼다. 기자 완장은 차고 있지만 사실은 정보 수집을 하는 남북한 정보 요원을 비롯한 당국자들이었다. 상당한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진짜 기자’처럼 행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당시 판문점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하나. 1984년 9월30일 판문점에서는 북한이 제공한 쌀ㆍ직물 등 수해복구 물자의 인수 작업이 부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남북관계는 원만치 않았지만 북한이 먼저 홍수 피해를 본 남한에 물자 지원을 제의했고, 우리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오전 10시쯤 쌀을 실은 북측의 첫 차량이 야적장에 도착하자 양측의 ‘진짜ㆍ가짜 기자’와 적십자 요원 등 10여 명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수재민 지원 물자 제공을 둘러싼 의례적인 얘기가 오가다 북측의 한 가짜 기자가 “서울의 어느 대학생이 데모하다가 자살했다면서…”라며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즉각 남한 측 가짜 기자가 나섰다. “여기는 인도적 사업을 하는 자리인데 그런 얘기는 왜 하나”.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남한 측의 누군가가 북측의 한 가짜기자에게 “당신 정보계통 사람이지”라고 농담조로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가 던진 말 “자기도 마찬가지면서….”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한국통계진흥원 ‘대한민국을 즐겨라, 통계로 본 한국 60년’>

북한은 우리에게 아직도 이념적으로 ‘먼 나라’이다. 그래도 60~70년대 남북관계가 극한 대치상황까지 갔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10여년의 남북교류는 활발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남북관계에 협력의 물꼬가 트인 것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7ㆍ7선언’이 직접적 계기다. 이후 7ㆍ7선언의 실무 작업이 마무리된 1992년부터 남북 교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남북 교역은 크게 확대됐다.

1989년 1800만 달러에서 시작한 남북 교역 규모는 2015년 27억1447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면서 2016년에는 교역 규모가 3억3256만 달러로 급감했다. 2017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까지 이어지며 91만1000 달러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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