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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위 수출대국의 과거… '오줌 외화벌이'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통계 한 스푼] 소변서 혈전용해체 추출, 당시 1kg 2000달러 받아

“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유로키나제를 당신의 오줌으로”
“한 방울이라도 통속에”

1970년대 초중고교와 병영, 예비군 훈련장 등 공중화장실에 붙었던 안내문이다. 화장실에 놓인 깔때기 모양의 주둥이가 달린 20L들이 플라스틱 통에는 학생과 군인들의 ‘쉬’들이 모였다. 이를 통해 수거해간 소변에서 ‘유로카이네이스’라는 효소를 추출해 만든 유로키나제는 혈전 용해제로 수출됐다. 당시 유로키나제 1㎏은 2000달러가 넘는 고가 수출품이었다. 수출할 물품이 변변찮았던 당시 한국으로선 한 방울의 소변도 아쉬웠다.

유로키나제 수출 소식을 다룬 1973년 9월28일자 중앙일보 기사.(왼쪽) 녹십자가 소변을 수거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비치한 플라스틱 수거통.

유로키나제 수출 소식을 다룬 1973년 9월28일자 중앙일보 기사.(왼쪽) 녹십자가 소변을 수거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비치한 플라스틱 수거통.

늦가을 환경미화원도 수출 전선에 투입됐다. 은행잎을 모으는 일이었다.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혈액 순환 촉진제 원료를 은행잎에서 추출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일대 자작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도 수출에 한몫했다. 1976년 200만 달러어치가 수출됐다. 당시 1만개에 7달러였으니 그해 28억6000만개의 이쑤시개를 수출했다는 얘기다. (한국통계진흥원 ‘대한민국을 즐겨라, 통계로 본 한국 60년’ 참고)

수출이란 말이 낯선 50~60년대 한국의 수출품은 자연 광물이나 농수산물이 주종이었다. 1961년 10대 수출품 가운데 철광석ㆍ중석ㆍ무연탄ㆍ흑연 같은 광물이 4개, 생사(누에고치에서 뽑은 실)ㆍ오징어ㆍ활선어ㆍ돼지털ㆍ쌀 등 농수산물이 5개였다. 공산품에는 합판이 딱 하나 끼었다.

1964년 11월30일은 한국의 수출 실적이 사상 처음으로 연 1억 달러를 넘어선 날이다. 1963년에 수출액이 연 8680만 달러였는데 그다음 해, 연말을 한 달이나 앞선 시점에서 당초 세운 목표를 넘어선 것이다. 당시 정부는 수출실적 1억 달러가 달성되는 날을 수출의 날로 기념한다고 미리 정해놓았다. 실제 이날이 ‘수출의 날’로 지정됐고, 1987년 이름을 ‘무역의 날’로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억 달러 수출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수입대체형 안정성장이냐, 수출 주도형 공업화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당시 박정희 정부가 수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수출에 드라이브를 건 한국은 1971년 수출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1977년에는 100억 달러 고지에 올랐다. 서독이 수출 1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에 이르는 데 11년, 일본이 16년 걸린 것을 한국은 6년 만에 해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995년 1000억 달러, 2013년 5000억 달러를 넘어선 한국의 수출 신기록 행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연간 누계 수출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단기간이자 최초로 10월 중에 수출 5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올해 수출 기록은 미·중 무역갈등, 미국 금리 인상 등 대외 악재 속에 이룬 성과라 의미가 남다르다. 올해 한국의 수출액은 사상 최대인 6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5737억 달러를 수출해 주요 71개국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세계 수출과 교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5%, 3.2%로 역대 최고 수치를 달성했다. 유럽의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영국ㆍ프랑스 등과 세계적인 무역 국가인 홍콩을 한국이 앞서고 있다는 점에서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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