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사냐 언론사가 대상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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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양대 교수이자 한겨레신문 논설 고문인 이영희 교수(60)가 북한 방문 취재 계획을 둘러싸고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14일 구속됨으로써 언론계는 물론 대학가·학계에 큰 파문이 일고있다.
공안 합동 수사본부 측은 이 사건과 관련, 14일 새벽 한겨레신문의 임재경 부사장을 연행하고 장윤환 편집국장을 소환함과 동시에 임·장씨의 가택 수색을 했으면서도 이 사건이 특정 신문사나 언론계에 대한 수사는 아니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입장이지만 한겨레신문이나 기자협회·재야단체에서는 이 교수의 구속이 언론활동을 위축시키는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 이 교수의 시방과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은 계속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수사 착수…검찰은 문 목사의 방북사건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증거물이 확보돼 이 교수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 목사 사건을 수사하던 합수부는 문 목사 일행인 유원호씨 집 가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유씨와 재일 동포 정경모씨·이영희 교수·백낙청 교수 등 4명이 일본에서 함께 찍은 사진 1장을 찾아냈다.
재일 동포 정경모씨는 문 목사의 방북을 주선한 장본인이며 문 목사의 평양행에 동행한 인물. 이 때문에 합수부는 정씨의 실체 파악을 위해 국내 인사중 정씨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고있던 중이었다.
이·백 두 교수의 해외여행 기간과 체류지 조사결과 유씨와 일본체류 기간이 모두 같은 것을 발견한 합수부는 12일 오전 두 교수를 연행함과 동시에 두 교수 집을 수색했다.
이 수색을 통해 합수부는 이 교수의 자택에서 이 교수 자필로 된 한겨레신문 취재단의 북한 취재를 위한 주선 요청서를 찾아냈다.
합수부는 이 요청서를 정밀 분석한 결과 처음에는 취재목적이라고 보고 구속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존경하는 김일성 주석각하…」부분에 자극받아 구속 수사키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입장=검찰은 이 교수의 취재 주선 요청서가 단순한 취재 목적이라기 보다는 문 목사의 경우처럼 대북 접촉에 정부 창구 단일화 원칙을 무시하고 김일성을 만나 통일 문제를 논의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어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이 언론계의 대북 취재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언론사 별로 비 공개리에 경쟁적으로 방북 취재요청을 해놓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내사하고 있다』고 흘리고 있어 주목거리.
검찰 고위간부는 북한측의 취재 허가가 있을 경우 언론사 측이 우리 정부의 승인아래 취재활동을 할 것으로 보지만 비 공개리에 북한측에 취재요청을 한 사실 자체는 실정법 위반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북 취재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는 순수한 목적이라면 실정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가벌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또 이 교수 사건도 방북 취재전에 과연 우리 정부에 허가 절차를 밟으려고 했는지 여부가 수사의 초점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그럴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신문 주장=한겨레신문은 이번 사건을『북한 실상을 바로 알리기 위한 언론 활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문 목사 방북사건 보도에 따른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측은 또 검토단계에 그쳐 실행된 바가 없는 취재논의를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타 언론사의 북한 방문취재는 묵인하면서 유독 이번 사건을 문제삼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재야법조계=변호사들은 이 교수가 취재목적으로 방북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문 목사와는 다른 차원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특히 그동안 언론사별로 비록 해외교포 기자에 의해서였지만 북한 방문 취재가 몇 번 이뤄졌고 이 교수도 방북 전 정부 당국에 허가절차를 밟을지도 모르는 미수 단계였으므로 형평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존경하는 김일성 주석 각하…」라는 부분이 실정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거두절미한 문구 한 부분만으로 이 교수를 구속한 것은 민주화 단계에서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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