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北, 웜비어 고문·살해 책임…5640억원 배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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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송환된 뒤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AP=연합뉴스]

지난해 6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송환된 뒤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AP=연합뉴스]

미국 법원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직후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에게 북한이 5억113만 달러(약 5643억원)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베릴 하월 판사는 24일(현지시간) 판결에서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외(外)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하월 판사는 손해배상금으로 4억5000만 달러(약 5067억원), 위자료와 치료비 등으로 5100만 달러(약 574억원)를 지급하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야만적인 방식으로 웜비어를 고문해 허위 자백을 하게 하고, 북한이 '재판'이라고 규정한 절차를 거쳐서 나온 긴 판결문을 대미(對美) 지렛대로 활용해 북한의 외교정책 목표를 추진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웜비어가 겪은 고통의 정도는 북한의 고문 방법과 그의 신체 손상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면서 "웜비어 부모는 북한이 아들을 붙잡아 전체주의 국가의 볼모로 쓰는 잔혹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북한 측은 불참했다. 하월 판사는 북한이 아무런 답변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 법원의 판결문이 북한에 전달되고, 북한이 배상금을 지불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북한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 중 하나여서 미국에서 압류할 만한 자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날 판결은 웜비어의 부모에게 상징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웜비어 부모는 재판 후 성명을 내고 "미국이 공정하고 열린 사법체계를 갖고 있어,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세계가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아들에게 정의가 함께할 때까지 결코 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사려 깊은 이번 판결은 우리의 여정에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웜비어는 2016년 1월 관광을 위해 찾은 북한에서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같은 해 3월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2017년 6월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 귀환한 지 엿새 만에 숨을 거뒀다.

트럼프 정부는 웜비어 사망 이후인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피해자를 고문, 납치, 상해, 사망케 한 테러지원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웜비어 부모는 지난 10월 북한 정부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금과 위자료 등 명목으로 11억 달러(1조2천600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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