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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나와 동생의 일상 통해 장애인·비장애인 모두와 소통 나섰죠

중앙일보

입력

장혜영 감독이 중앙일보 사옥에서 소년중앙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장혜영 감독이 중앙일보 사옥에서 소년중앙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영상이 미디어 세대를 이끌어가는 시대입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실용적인 콘텐트를 접하며 자란 세대가 느끼는 영화는 뭐가 다를까요.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든 유튜브 영상이 되었든 현실을 그대로 담는 움직이는 이미지, 사회의 모습, 문화, 그 안의 인간 관계를 녹인다는 것은 공통점 아닐까요. 여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하다가 자신과 동생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감독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13일 개봉한 영화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이야기예요.

영화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장 감독은 동생 장혜정씨에게 많은 영감을 받는다. 때로는 마음을 잘 알아주지 않는 동생이 서운할 때도 있다.

장 감독은 동생 장혜정씨에게 많은 영감을 받는다. 때로는 마음을 잘 알아주지 않는 동생이 서운할 때도 있다.

장 감독이 동생 장혜정씨와의 6개월 일상을 빠짐없이 기록한 4TB(terabyte) 분량의 영상을 편집한 것은 일상의 인간 관계를 그대로 드러낸 영화의 단적인 예입니다. 장 감독은 18년 만에 '탈시설'에 성공한 동생과 한집에 살면서 형성해가는 관계를 영화에 담았죠. 또, 두 사람의 시선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고발하기도 합니다. 혜정씨는 본인이 주인공인 이 영화를 꽤 좋아하죠. 이미지로 의사소통하고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건 인간의 욕망 중 하나니까요. 인간이 이미지로 생각하고 이미지로 소통하는 행위는 이미 기원전 수만 년 전부터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법이었거든요. 평소 영화·사람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현진 학생모델, 정현서 학생기자가 그의 이야기를 들었죠.

장 감독은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유튜브에서 검색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가 '생각많은 둘째언니' 채널을 유튜브에 개설한 계기다.

장 감독은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유튜브에서 검색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가 '생각많은 둘째언니' 채널을 유튜브에 개설한 계기다.

Q. 영화 제작과 책을 쓴 시기가 겹치나요.
A.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의 시설 밖 생존일기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텀블벅(창작자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펀딩을 완성하고 얼마 안 있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죠. 영화 촬영과 병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영화 작업을 끝내고 썼습니다. 2월에 다큐멘터리 편집까지 마무리한 뒤 책이 7월에 나왔으니 중간 과정을 빼면 석 달 만에 탈고한 셈이죠. 저와 동생 혜정의 이야기 자체는 사실 30년 동안 쓴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아요. 늘 하고 싶던 얘기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던 얘기였거든요.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니 감이 잡혔죠. 영상으로 적절했던 부분과 언어로 비교적 적절할 부분이 가늠되더라고요. 일상성을 언어로 재현하기는 한계가 있잖아요.

영화 &#39;어른이 되면&#39; 주인공 장혜정씨.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영화 &#39;어른이 되면&#39; 주인공 장혜정씨.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Q.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 유튜브 채널 운영, 책 집필까지. 세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를 만난 셈이죠. 힘들었던 적은 없나요.
A. '뭘 해야지' 하고 한다기보다 '살아야지' 싶어서 한 게 많아 자연스레 됐어요. 유튜브 채널을 연 계기는 여러 개예요. '이야기를 하는 미디어 채널을 직접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세상이 빨리 변하니까 더 어린 분들과 공유하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굳이 유튜브라는 채널을 골랐죠. 블로그에 써봤자 존재를 보여줄 수 없으면 소통할 수 없으니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인간이 되자'고 생각했죠. 유튜브 채널용 촬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생각도 들었죠. 영화에 쓰려고 곡도 썼죠.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없어? 그럼 하지 뭐'라는 식이었습니다.

장 감독은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혔던 흔한 &#39;언니&#39;였다.

장 감독은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혔던 흔한 &#39;언니&#39;였다.

Q. ‘나는 정말로 엄마를 좋아했고,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설령 엄마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엄마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엄마가 없는 동안 혜정이를 잘 돌보는 것뿐이었다’라는 구절이 책에 나옵니다. 영화에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장면이 나와요. 혹시 지금 감독님의 무의식에 엄마가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때의 기억이 강렬했던 건 아닌지 궁금해요.
A. 그쵸. 동생의 언니로 태어난 게 지금의 저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에요. 유튜브 채널 이름을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 정한 계기이기도 하죠.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한 살 어린 동생을 돌보다 보니 진짜 많은 생각을 했죠. 아이들은 부모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따르게 되잖아요. 어쨌든 한국서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책임지는 건 가족이죠. 가족 중에서도 엄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엄마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됐어요. 나라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땐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건강한 것은 아니죠. 아이니까요. 전 너무 일찍 '나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로 살고 싶지'보다는 '나는 혜정의 언니'라고 생각하면서 저 자신을 만들었던 거예요. '동생이 약하니까 나는 강해야지'라는 식이죠.

장 감독 가족 구성원에서 동생 혜정씨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건 &#39;언니&#39;인 장 감독 자신이다.

장 감독 가족 구성원에서 동생 혜정씨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건 &#39;언니&#39;인 장 감독 자신이다.

Q. 혜정이 하녀’라도 불린다든지 막상 혜정님은 언니를 ‘사사건건 자기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 여긴다든지. 혜영님이 가족 중에서도 특히 혜정이에게 돈독했던 것 같아요. 큰언니가 있는 데도 말이죠. 혜정님에게 유독 특별한 책임감을 느꼈던 이유는 뭘까요.
A.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예쁨을 받았던 존재예요. 3년간 그렇게 살았을 어린아이에게 천하가 뒤집힐 일이 생긴 거죠. 모든 게 막내 혜정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걸 보면서 못 받아들였을 수 있죠. 언니는 우리 셋이 있으면 혼자 놀러 가버렸어요. 그때는 언니를 싫어했는데 성장하고 나니 이해하게 됐죠. 어린아이인데 희생해야 하는 거잖아요. 갑자기 그런 분위기에 놓이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일 거예요. 가족 구성원이 한데 모여 왜 협력해야 하는지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이렇게나 힘든데 도와주지 않는다니' 하는 말이니 힘들었겠죠.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포기하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측면이 있어요. 또, 혜정이와 한 살 터울이니 제 눈에만 더 잘 보이는 혜정이의 행동들도 분명 있었고요. 그게 제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동생 혜정씨가 가끔은 서운한 혜영씨.

동생 혜정씨가 가끔은 서운한 혜영씨.

Q. 혜정님을 향해 쓴 마음 혹은 책임감에 대해 ‘혜정이에게 서운하고 언젠가 우리 가족 중에서도 내가 자기를 잘 아는 사람임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진다고 했죠. 자기 주문의 일종일까요 기대에 응답받은 적이 생각보다 많을 것도, 특별히 혜정님에게 ‘돌봄’에 대해 ‘고맙다’는 마음을 듣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예컨대 변기를 뚫다가 혼자 우셨다는 밤처럼 말이에요.
A. 어렸을 땐 그랬죠. 언젠간 알아주겠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죠. 사실 바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서운했어요. 이렇게까지 내가 너를 생각하는데 왜 안 통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졌어요. 사람은 누구나 같은 걸 봐도 같은 감정을 경험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서로 눈을 보지 않고 얘기하면 문제가 있는 거죠. 혜정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 눈을 안 봐요. 영화에도 이 장면이 나오죠. 눈을 안 보는 것으로 자기 심정을 제게 표현하는 거거든요. 그게 동생이 가진 언어 방식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저도 계속 괴로운 거죠. 나의 언어만큼 동생의 언어도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예전엔 쉽지 않았어요.

&#34;한편으로 힘이 들었다. 지난 일년반동안 무수히 해왔던 이야기를 매일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마치 처음 이야기하듯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의 힘이 많이 필요했다. 나에겐 같은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에겐 새로운 이야기니까. 기를 쓰다가 집에 돌아오면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 웅크리고 있는 날들이 많았다.&#34; 장 감독이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34;한편으로 힘이 들었다. 지난 일년반동안 무수히 해왔던 이야기를 매일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마치 처음 이야기하듯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의 힘이 많이 필요했다. 나에겐 같은 이야기지만 듣는 사람에겐 새로운 이야기니까. 기를 쓰다가 집에 돌아오면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 웅크리고 있는 날들이 많았다.&#34; 장 감독이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Q. 감독님에게 '이 세상은 해야 하는 일로 가득 차 있었다'고요. 게다가 사람들이 '어린이에게는 꿈을 물었지만 혜정님, 감독님에게는 마치 예외인 양 묻지 않았다'는 게 슬펐어요.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요.
A.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겠죠. 이렇게 하면 쉬워요. '당신의 자리에 서 있는 발달장애인을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 거죠. '대통령을 꿈꾸는 발달장애인'을 보면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어린 시절 언니인 저는 동생을 돌보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묻지 않았겠죠. 저는 눈빛을 보고 느꼈죠.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어른들은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 스쳐 지나가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있어요. 아이 대하듯 하는 건 매우 부적절한 건데 '그만둬주세요'라고 하는 얘기를 매사에 하기가 쉽진 않아요. 늘 상황과 맥락이 있으니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어려운 거죠.

(왼쪽부터)정현서 학생기자, 장혜영 감독, 이현진 학생모델.

(왼쪽부터)정현서 학생기자, 장혜영 감독, 이현진 학생모델.

Q. 혜정님이 있던 여주 시설의 입소 서약서에 '입소 후 장애인의 질병이 약화되거나 기타 사고로 사망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했죠. 이를 본 건 어른이 된 후인가요.
A. 성인이 되고 나서 시설서 서류를 보고 알았어요. 서류도 충격이었고 아버지 서명도 충격이었죠.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서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가 가장 큰 이유였을 테죠. 어떤 서비스를 원해서 이용하면서 약관을 제시하면 비동의할 자유는 없잖아요. 하지만 동생 혜정이는 자기 의지가 아니었잖아요. 사회의 다른 많은 이들처럼 살 자격이 없는 것처럼 판명 난 거죠. 말하자면 '격리' 됐던 셈인데 혼란스러웠죠. '나는 그럼 뭘까. 사실 나도 혜정의 세계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내 마음 속에서 동생의 존재가 큰데. 나도 뿌리가 같은데. 내가 멀쩡하게 섞여서 길을 가도 사실 나는 좀 더 혜정의 쪽에. 정해진 불행의 길을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죠. 동생은 시설에 살다가 시설에서 죽을 운명이었잖아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동생은 제 책임이 되겠죠. 그럼 저도 같이 '가난해지다가 병들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한테 희망적인 얘기는 저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사회에서 정한 좋은 길'이란 걸 가고 있었는데도 불안했죠.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갔지만 취업한 친구, 선배들을 보며 알았죠. '저들의 길은 내 길이 아닐지 모르겠구나' 하는 거요. 진짜 내 운명은 동생을 돌보는 거로 귀결될 거라는 걸 자각한 거죠. 만일 제가 성공하더라도 동생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신이 들어 대학을 나왔어요. 내가 돈을 벌고 여유가 생길 때까지 동생이 기다려줄까를 생각하니 당장이 급했죠. 사람을 돌볼 시간을 마련하는 게 제 최선의 과제로 다가왔어요.

&#34;혜정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우리의 밋밋하고도 스펙타클한 일상에서 나는 언뜻언뜻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았고 그것을 영화에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 <어른이 되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34;

&#34;혜정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우리의 밋밋하고도 스펙타클한 일상에서 나는 언뜻언뜻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았고 그것을 영화에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 <어른이 되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34;

Q. ‘인간 실격’ 작가 다자이 오사무(だざいおさむ, 1909년 6월 19일, 일본 - 1948년 6월 13일)의 고향인 일본 아오모리를 혜정님과의 첫 여행지로 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그가 상징처럼 남긴 말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잖아요. 감독님 작품을 보면 어린 시절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그저 태어난 혜정님에게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판단의 말을 하고 시선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죠. 그것과 연관이 있나요.
A. 그럴 수 있죠. 다자이 오사무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예요. 그의 작품과 그의 인생이 상당히 겹쳐 있죠. '내가 인생을 살아도 되나' 하는 인식을 가진 사람, '인생을 좋아하지만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가 쓰는 절망의 글들이 정말 절망스럽고 제겐 위로가 됐어요.

&#34;나와 혜정의 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만, 아직 3만여명의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갇혀 스스로의 삶을 규정해나갈 자유를 박탈당한 채 &#39;몸&#39;으로서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39;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39;보다 그렇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장애등급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종잇장으로 돌아간 모든 약속들은 뜨겁게 투쟁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연말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34;

&#34;나와 혜정의 이야기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지만, 아직 3만여명의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갇혀 스스로의 삶을 규정해나갈 자유를 박탈당한 채 &#39;몸&#39;으로서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39;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39;보다 그렇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장애등급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종잇장으로 돌아간 모든 약속들은 뜨겁게 투쟁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연말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34;

Q. 촬영감독 윤정민님, 친구 은경님은 프리랜서로 일하던 곳에서 알던 사이인가요.
A. 학교 선후배 사이예요. 윤 감독은 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2년 후배죠. 은경도 9년 후배예요. 은경과는 멘토, 멘티 사이였어요. 미디어재단 프로그램에서 제가 멘토링을 하는 게 있었죠. 거기 지원했던 청소년이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작업을 열심히 했고 자유로웠던 친구였어요. 그 때부터 친구처럼 지냈어요. 은경은 영화과를 가서 작업했고 저와 자주 일을 했죠.

&#34;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올겨울 천오백편에 달하는 영화가 개봉한다. 그 가운데 <어른이 되면>이 지금처럼 스크린에 걸린 건 거의 기적이다. 여러분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34;

&#34;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올겨울 천오백편에 달하는 영화가 개봉한다. 그 가운데 <어른이 되면>이 지금처럼 스크린에 걸린 건 거의 기적이다. 여러분이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34;

Q. 스태프들과는 늘 함께 지냈나요. 촬영 환경이 어땠는지 세세하게 듣고 싶어요.
A. 함께 지내는 시간이 아무래도 길었어요. 합숙을 종종 했고요. 두세 명 정도 같이 있었죠. 편집은 정말 힘들었어요. 4테라 영상을 다 보기가 너무 싫었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제 머릿속으로 만들어둔 구성안에 있는 분량만 보면 안 될까 싶었는데 정민 친구가 원칙주의자예요. 에누리 없이 다 봐야 한다고 해서 몇백 시간을 다 봤죠. 다 보니 그 아에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극의 특징이라면, 혜정의 변화가 두드러지기보다 주변인의 근본적 변화가 눈에 띄었다는 겁니다.

학생기자 취재 후기

(왼쪽부터)이현진 학생모델, 장혜영 감독, 정현서 학생기자.

(왼쪽부터)이현진 학생모델, 장혜영 감독, 정현서 학생기자.

이현진(부천 석천중 1) 학생모델
감독님께서 제가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서 잘 알려주시니 굉장히 감사했어요. 또한 장애인에 대한 발언을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 등 자세히 알려주셔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다름'에 대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의 조건으로 쓰는 친구들에게 꼭 말해줄 거예요.

정현서(오산 세마중1) 학생기자
장 감독님은 동생과 자신이 눈총을 받자 '이제 편해지고 싶다' 며 편견을 깨려고 힘껏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함께 편견을 가지지 말고 곧은 시선으로, 차별하지 않았으면 해요. 생각이 퍼져 시작해 사람들이 다르게 보지 않았으면 해요. 감독님과 함께해 뜻깊은 시간이었죠. 감사해요.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송상섭(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이현진(부천 석천중 1) 학생모델, 정현서(오산 세마중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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