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펜스 부통령까지 참았다…“북한 인권유린 연설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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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2월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 인권에 집중해 북한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뉴시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2월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 인권에 집중해 북한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뉴시스]

미국 정부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올려놓기 위해 잇따라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북 인도지원 허용 가능성을 알린 데 이어 인권 문제를 놓고 선을 지키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미국 ABC방송은 22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북한 인권유린에 대한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를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다른 스케줄과 겹쳤기에 때문이라는 게 펜스 부통령 측 공식 입장”이라면서도 “북한을 화나게 할 수 있고 비핵화 대화를 탈선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공식적으로 북한 인권 유린의 최종 책임자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목했다. 따라서 지난 17일 유엔총회에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맞춰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할수록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겠다는 경고가 된다.

이런 국면에서 대북 강경파였던 펜스 부통령이 북한 인권 연설에 나서려다 취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백악관이 평양에 보내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했을 때 당시 청와대의 계속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내려온 김여정 일행과의 공식 접촉을 거부했던 대북 원칙주의자다.

따라서 펜스 부통령의 대북 비난 연설 취소는 북·미 비핵화 협상을 염두에 두고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공개적 압박은 자제하고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ABC 방송은 “인권 단체들은 펜스 부통령의 연설 취소가 트럼프 행정부가 인권 유린에 대한 압박을 일부 풀어주려는 또 다른 신호가 될 것을 우려한다”고도 전했다. 펜스 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서 대북 매파로 움직였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잠잠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마지막 방북인 지난 10월7일 당시 사진. 이후 북미 협상은 계속 교착국면이다. [사진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마지막 방북인 지난 10월7일 당시 사진. 이후 북미 협상은 계속 교착국면이다. [사진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대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전면에서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 그는 21일(현지시간) 라디오방송 NPR과 인터뷰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 금지 완화에 대해 “깊은 함의가 있기에 중요하다”며 “(북한에) 현실적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 기간에 미국 내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활동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한 데 대한 설명이다. 비건 대표는 20일 외교부에서 연 한ㆍ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에 오케이 사인을 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및 미국의 독자 제재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에 지원할 수 있는 틈새를 찾은 셈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미 워킹그룹 2차회의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비건 대표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 금지 완화에 대해 ’대북 제재 해제 의도는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한미 워킹그룹 2차회의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비건 대표는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 금지 완화에 대해 ’대북 제재 해제 의도는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뉴스1]

단 대북 인도적 지원의 일부 허용을 놓고 폼페이오 장관은 NPR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처럼 (앵커가) 얘기하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비건 대표도 21일 서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금지 해제가 제재 해제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제재 해제 의도는 전무하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정부가 제재 해제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이유는 본격적인 대북 제재 해제는 북한이 비핵화의 선행 조치에 나설 때만 가능하다는 원칙에서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을 향해 대북 인도적 지원 허용처럼 사실상의‘제재 완화’조치를 꺼내면서 공식적으론 ‘아직 제재 해제는 없다’고 읽는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라는 핵심만 제외하고 그 주변부의 가능한 조치들은 모두 활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초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밑불 때기라는 얘기도 있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최근 미국이 1월1일 이후 정상회담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연초에 북한 카드를 다시 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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