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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대전 막아야" 주한미군 철수 제동 건 매티스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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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2017년 10월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2017년 10월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초 “주한미군은 세계 3차대전을 막기 위해 주둔하는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막았던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2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철수를 결정하자 “마음에 맞는 국방장관과 일하라”며 사표를 던졌다. 이로써 지난 3월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과 이달 사임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 ‘바른말’을 했던 어른들의 축이 모두 트럼프의 곁을 떠나게 됐다.

“美 국력은 동맹·우방과 불가분 관계” #사퇴서, 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 경고

뉴욕타임스·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 미리 작성한 2페이지 분량의 사퇴 서한을 들고 시리아 철수 번복을 설득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백악관에서 돌아온 매티스는 사퇴 서한 50부를 복사해 국방부 전체에 배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후 트윗에서 “매티스 장관이 2월 말 퇴임한다”며 “새 국방장관을 곧 지명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매티스 장관은 서한에서 “당신은 이 사안과 다른 주제에 견해가 더 잘 맞는 국방장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며 “나는 지금이 이 자리에서 물러날 적절한 시점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또 “내가 항상 지닌 신념은 우리의 국력은 고유하고 광범위한 동맹 및 우방 시스템의 힘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계돼있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자유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나라로 남아있는 한, 우리는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고 동맹을 존중하지 않고선 우리 이익을 수호하고 우리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퇴임 순간에도 그는 “동맹을 존중하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일방주의)를 경고한 것이다.

올해 68세, 해병대 대장 출신인 매티스 장관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전장을 누벼 ‘수도사 전사’로 불린다. 2011~2013년 중부사령관으로 44년 군 생활을 마쳤다. 2017년 2월 2일 국방장관 취임 직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매티스 장관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2000여명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전면 철수만을 막기 위해 애썼다. 그는 “이처럼 중요한 국가안보 정책을 갑자기 전환할 경우 시리아를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 아래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공약으로 시리아 철군을 약속했고, 지난 4월에도 철군을 단행하려 했지만 “임무 완수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마지못해 동의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 밥 우드워드가 올해 출간한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매티스 장관은 올해 초 ‘주한미군 주둔에 35억 달러나 쓸 이유가 있느냐’며 철수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미군 주둔은 세계 3차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막았다고 한다. 이런 매티스 장관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CBS 방송에 “나는 그가 일종의 민주당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미군의 시리아 철수가 2014년 이래 5년 동안 이슬람국가(IS)와 전쟁 동맹이던 쿠르드 민병대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고 반발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이미 IS로부터 탈환한 시리아 국토의 30%를 장악했고 북부에 쿠르드족 자치지역을 보장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족은 분리주의 테러리스트”라며 이들에 대한 소탕 작전을 예고했다. 그러곤 지난 18일 미국이 터키에 35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패트리엇-3 미사일 수출을 승인한 다음 날 트럼프는 시리아 전면 철수를 발표했다.

국방부 관리들은 현재 1만 4000명인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가운데 절반인 7000명도 앞으로 수개월 동안 철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IS와 전쟁 승리를 선언하면서 시리아에 이어 아프간에서도 미군 철수 도미노가 벌어지는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이 17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셈이다. 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11년 이라크 주둔 미군 17만명 전면 철수에 이어, IS와 전쟁 때문에 추가로 파병된 5200여명의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도 멀지 않게 됐다.

트럼프의 도발적인 대북 언사나 즉흥적 정책을 막아오며 외교·안보 정책의 균형추 역할을 했던 ‘어른들의 축’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사라지면서 향후 대외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되고 불합리하고 불규칙적인 시점에 마지막으로 ‘방 안에 있던 어른’의 사임은 의원들과 동맹국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라며 “대통령 한 명만 남았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매티스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안정성과 자제력을 높여온 영향력 있는 인사”라며 “시리아 철군과 잠재적인 아프가니스탄 병력 감축 와중에 그의 사퇴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을 포함한 국제적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주둔 미군 철수에 이어 한반도에서 평화 추진을 서두르고 유럽 부자 동맹국들에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내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해외 철수 도미노가 2만 8500명이 주둔 중인 주한미군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국방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매티스 장관에 대해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포함해 한국 같은 동맹국의 입장을 이해해줬다”고 평가하며 “후임자로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이근평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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