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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스위스군이 몰락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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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1315년 11월 15일 서리가 내린 스위스 모르가르텐 산기슭.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1세의 기사단은 전투에 앞서 승리를 자신했다. 오스트리아 기사단은 화려한 갑옷을 입고 튼튼한 말을 탔다. 반면 스위스군엔 기병이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갑옷은커녕 다 떨어진 옷차림이었다. 달랑 창 하나만 들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군이 먼저 공격했다. 창을 든 스위스군이 밀집대형을 이루자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오스트리아 기사단이 돌격했지만, 스위스군의 창 벽에 가로막혔다. 그들은 곧 무지렁이 스위스 농부들에게 학살당했다.

스위스 공화국의 독립을 이끌고, 중세 최강 스위스 장창병(長槍兵) 전설의 서막과도 같은 모르가르텐 전투였다. 그전까지 기사단을 맞서 이긴 군대는 없었다. 그러나 스위스 장창병은 만나는 기사단마다 격파했다. 비결은 5m 길이 물푸레나무에 30㎝ 날을 단 장창이었다. 여러 줄의 병사들이 파이크라고 부른 장창을 앞으로 겨누면 밀집대형은 쐐기이자 요새가 됐다. 앞줄의 병사가 전사하면 바로 뒷줄에서 자리를 메웠다. 스위스 장창병은 용맹한데다, 마을과 지역 단위로 부대를 꾸렸기 때문에 단결력이 높았다. 지금도 교황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는 스위스 장창병에서 비롯됐다. 16세기 스위스 장창병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었다. 화약무기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밀집대형 한가운데 포탄이 떨어지면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쇼델러 연대기』 중 스위스 장창병(왼쪽)이 프랑스 기사단과 싸우는 장면.

『쇼델러 연대기』 중 스위스 장창병(왼쪽)이 프랑스 기사단과 싸우는 장면.

『중세의 전쟁』을 쓴 영국의 중세 사학자 찰스 오만은 스위스 장창병의 몰락 원인을 무너진 내부 규율에서 찾았다. 장창병은 자만심에 지휘관을 무시했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명령은 듣지 않았다. 선공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선공했다. 결국 패배가 잇따랐다. 철옹성처럼 보였던 군대도 영원치 않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에도 불구하고 휴전선은 끄떡없다고 자신한다. 북한은 이미 재래식 군사력에선 한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서다. 하지만 한국군에서 모욕·폭행 등 상관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는 2014년 79건에서 지난해 196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만 116건이었다. 군기 문란이다. 스위스 장창병의 말로를 한국군이 따라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