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싸움에 터진 고래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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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하철 파업을 몇 시간 앞둔 15일 밤 중앙일보편집국 전화는 쉴새 없이 울려댔다.
『내일 지하철을 탈 수 있겠느냐』는 시민들의 문의였다.
시민들은 그러면서 지하철분규에 대한 저마다의 견해를 말했다.
시민들의 견해는 구구각색이었다. 그 견해들을 통해 이번 분규가 내포한 여러 측면의 문제점들이 다시 한번 집약되는 듯 했다.
일반사업체에 비해 냉각기간만 5일 더 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파업으로까지 연결되는 공익사업운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아예 방관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지방공사의 위치, 『우리는 항상 진지하게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면서도 막상 시청 정문을 사이에 두고 『문 열라』 『못 연다』고 티격태격하는 양측의 우스꽝스런 태도, 현재의 지하철 운영조차 제대로 통제를 못하면서 2000년까지 전체교통에서 수송분담률을 50%까지 차지하는 지하철망을 구성하겠다고 재원조달 방안도 제시 못한 채 신규노선건설을 발표한 서울의 전시행정, 그리고 시민들의 「장님 제 닭 잡아먹기」 공짜심리.
자신이 고덕동에 사는 30대라고 밝힌 시민은 『낮에 회사에 가면 노조원이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아파트노조에 대한 사용자라는 이중적 신분임을 지난 아파트노조파업 때 깨달았다』며 『어쩌면 이번 지하철파업이 1천만시민들의 이기주의를 반성하게 하는 「현실적 교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사양쪽의 새우들 싸움에 1천만 시민의 발이라는 고래 등이 터져 버린 뒤바뀐 속담이 현실로 나타난 지하철 파업.
6천 노조원의 생존권을 위해, 또 합의조항을 밥먹듯 뒤바꾸는 사용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파업까지 밀어붙인 노조와 1천만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하철인데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며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에 공권력 동원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 서울시 모두 명분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주장을 앞세우는 형식의 민주주의보다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어 가는 내용의 민주주의다. 또 시비를 가리는 준거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공공의 이익」이어야 할 것이다.
이철호<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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