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은 ‘빛 좋은 개살구’ …국일고시원 화재 피해자들 입주 거부

중앙일보

입력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현장. 이날 화재로 건물 거주자 26명 중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스1]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현장. 이날 화재로 건물 거주자 26명 중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스1]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로 터전을 잃은 거주자 상당수가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7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종로구청이 국일고시원 거주자 32명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입주신청을 받았으나 절반 이상인 18명이 이를 거부했다. 입주를 신청한 14명도 임대주택 거주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주택 6개월 제공’이 이들의 실질적인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대책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앞서 국토부는 이번 화재로 주거지를 잃은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주거지원방안을 마련해 지원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고시원 화재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거주자 32명에 대해 임대주택을 6개월 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가 제시한 임대주택은 면적이 14~49㎡(약 4~15평)로 넓고, 주택 내에 화장실도 있어 쾌적하다. 이주할 경우 국일고시원 거주자는 보증금 없이 매달 3만~4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된다.

그러나 거주자들은 “우리 사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무원들이 일 처리하게 편한대로 대책을 짠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임대주택에 가져갈 가구, 전자제품 등 집기 등을 구매할 여력이 없어 또 다른 고시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임대주택의 지리적 조건도 걸림돌이 됐다. 국일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는 40~60대 일용직 근로자로 종로·서울역 부근 ‘인력 시장’에 나가기 위해 새벽 4~5시경 집을 나선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임대주택은 은평구·성북구·중랑구 등에 집중돼 건설현장과 거리가 멀다. 그렇게 되면 매일 교통비가 드는데다, 일터에 늦어 일감을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거주자들은 지적했다.

종로구청 측은 "임대주택 입주를 거부한 거주자들이 있지만,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는 7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를 냈다. 화재는 301호 거주자가 전기난로를 켜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발생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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