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판문점 직통라인 '빛'의 속도로 바꾸려던 계획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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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23일 판문점에 설치한 직통전화와 팩스를 연결한 회선을 광(光)케이블로 교체하는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통일부는 회담 직후 “남과 북이 당국 간 통신망 개선을 위해 남북공동 연락 사무소(개성공단에 위치)에서 남북 통신 실무회담을 했다”며 “이번 회담에서 노후화된 기존 남북 당국 간 통신망을 광케이블로 개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인 문제들은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1971년 9월 개설된 남북 직통라인을 구리케이블에서 광케이블로 교체해 통신환경을 개선하려던 정부 계획은 다소 늦춰지게 됐다.

23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통신실무회담에 참석한 남측 수석대표 정창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이 북측 리영민 국가정보통신국 부장(북측 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통일부]

23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린 남북 통신실무회담에 참석한 남측 수석대표 정창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이 북측 리영민 국가정보통신국 부장(북측 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통일부]

남북은 통상 회담을 한 뒤 공동보도문이나 합의서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날은 이런 합의 내용이 아닌 ‘회담 결과’ 형태로 통일부가 회담 소식을 전했다. 회담을 하고 기존의 구리케이블을 광케이블로 교체하자는 원론적인 뜻은 모았지만 추가로 협의할 내용이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양측이 어떤 사안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했는지, 또 추가로 협의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북 23일 통신 실무회담 개최했으나 합의는 못해 #"광통신 교체 원칙적 합의", 추가 협의 진행키로

남북 통신 관계자들이 23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판문점에 설치된 직통라인을 광케이블로 교체하는 문제를 놓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이 남측.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남북 통신 관계자들이 23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판문점에 설치된 직통라인을 광케이블로 교체하는 문제를 놓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이 남측.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다만, 광통신은 일반 구리 케이블과 달리 공사내용이 복잡하고, 투입하는 장비가 많아 기술적으로 추가 협의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신설비의 특성상 호환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하루만에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남북 경협이나 남북간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데 남측의 신중한 태도에 북측이 불만을 토로해 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북측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제재로 이유로 속도 조절을 강조하고 있는 남측 정부를 압박해 왔다. 북측에 항공 및 선박 운항을 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측은 지난 16일 항공분야 실무회담에서도 남북 항로 개설이나 북측 영공 통과를 제안했다. 북측 영공을 통과할 경우 미국이나 유럽으로 향하는 항공기의 운항 시간이나 경비가 단축되지만, 북측에 통과료(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문제로 정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남북이 지난 7월 실시한 군 통신선 복구 공사 때 대북제재 예외로 인정을 받았다”며 “판문점의 통신장비를 교체하는데 국제사회의 우려가 있겠지만,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안에서 남북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제재와 상관이 없는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서도 미국 측과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남북) 철도 공동조사와 관련해 미국 등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남북관계와 관련된 모든 현안과 관련해서는 제재의 틀 안에서 긴밀히 조율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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