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차 11년 만에 최악 … 소득성장 악몽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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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참사의 피해가 저소득층에 집중되며 최악의 ‘분배 쇼크’에 직면했다. 빈부 격차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이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줄며 이들의 벌이가 갈수록 감소하는 반면 고소득층의 지갑은 더욱 두툼해지는 모양새다.

하위 20% 소득 7% 줄어들고 #상위 20%는 8.8% 늘어 5.5배차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취약층 일자리 줄여 정책 역효과”

이는 취약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정책 취지와 다른 흐름이 뚜렷한 만큼 정부 정책 기조의 수정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2018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52를 기록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이 5.5배 넘게 차이 난다는 의미다. 3분기 기준으로 2007년(5.52)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소득 하위 40%(1~2분위) 가구의 벌이가 모두 줄었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분기에 131만8000원이다. 1년 전보다 7%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3분기 연속 감소세다. 2분위(소득 하위 20~40%) 가구 소득도 284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0.5% 감소했다.

반면에 소득이 많은 4분위(소득 상위 20~40%), 5분위(상위 20%) 가구의 3분기 월평균 소득은 각각 569만1000원, 973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각각 5.8%, 8.8% 늘었다. 5분위 가구 소득은 2016년 1분기부터 11분기 연속 증가했다. 3분기 전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4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4.6% 늘었다.

당초 3분기 분배 지표는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정부가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돈이 9월부터 늘어나서다.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기존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랐다. 또 만 6세 미만 아동이 있으면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하지만 이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3분기의 마지막 달인 9월부터 기초연금 인상이 시작된 점 등의 이유로 연금 확대에 따른 효과가 확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소득 증감을 좌우한 건 결국 일자리였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는 줄었지만 고소득층의 일자리는 증가하면서 ‘근로소득’에서 차이가 더 벌어졌다. 3분기 가구당 취업자 수는 1분위가 0.69명, 2분위가 1.21명이다. 각각 전년 대비 16.8%, 8.2% 감소했다. 반면에 4분위와 5분위 가구당 취업자 수는 각각 1.8명, 2.07명으로 1년 전보다 1.3%, 3.4% 증가했다.

그러면서 1분위 근로소득은 22.6% 감소한 반면 5분위의 근로소득은 11.3% 증가했다. 1분위 근로소득 감소 규모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크다. 사업소득의 경우 1분위(-13.4%), 2분위(-1.5%)는 물론 소득 상위 40~60%인 3분위(-11.9%)도 줄었다.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반영된 수치다.

세금주도 성장? 매달 꼭 내는 돈 첫 100만원 돌파

세금·연금·건강보험료 등 국민이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돈(비소비지출)도 사상 처음으로 월평균 100만원을 넘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은 106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3%나 급증했다. 평균 가계소득(474만8000원)의 22.4%로, 증가 폭은 2003년 관련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대다. 통계청은 근로소득세 및 재산세 부담 증가와 건강보험료율 인상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런 비소비지출 증가는 결국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을 줄이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며 “‘소득 증가→소비 증가→내수 진작’이라는 당초 소득주도성장의 선순환 구조에 구멍이 생기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취약계층이 많은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분배 지표에도 투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로부터 받는 각종 보조금·복지수당·연금 같은 돈(이전소득)도 22.8%나 늘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는 이전소득(60만4700원)이 근로소득(47만8900원)보다 12만5800원 많았다. 생활을 정부 등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결국 저소득층의 소득을 세금으로 지원했는데도, 저소득층의 전체 소득은 줄어든 것”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이 실제로는 ‘세금 주도 성장’이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악화한 분배 지표에 대해 “엄중함을 잘 인식하고 있고,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최대한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엄중한 인식’이 정책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의 역효과가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며 “분배를 개선하려면 일자리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하고 그러려면 민간의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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