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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검은 예수’ 드록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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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고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사인 유니폼을 선물하는 드록바(왼쪽). [드록바 인스타그램]

고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사인 유니폼을 선물하는 드록바(왼쪽). [드록바 인스타그램]

축구의 힘으로 전쟁을 멈췄다고 해서 ‘검은 예수’로 불렸던 디디에 드록바(40·코트디부아르)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드록바는 2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은 내게 엄청난 시간이었다. 이제 은퇴해야 할 시기”라고 공식 발표했다.

프리미어리그 첼시 4회 우승 이끌어 #“무기 내려놓자” 호소, 내전 종지부

그는 자서전 제목 『헌신』처럼 그라운드 안팎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태어난 드록바는 6세 때 축구선수 삼촌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다. 피부색이 다른 그는 유년 시절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한 백인 소년은 드록바의 피부가 검은색인지 확인하겠다며 살을 문질러보기도 했다.

1998년 프랑스 르망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갱강에서 뛸 때도 인종차별은 계속됐다. 갱강팬으로부터 ‘바나나 먹는 놈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적힌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래도 드록바는 이를 악물고 그라운드를 누빈 끝에 2003~04시즌 프랑스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32골을 기록했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2004년 잉글랜드 첼시 지휘봉을 잡은 뒤 드록바를 영입했다. 드록바는 모리뉴 감독의 부응해 프리미어리그 4회, FA컵 4회 우승을 이끌었다. 폭발적인 슛과 타점 높은 헤딩으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두 차례 올랐다.

첼시 시절 엄청난 득점력을 뽐낸 드록바. [드록바 인스타그램]

첼시 시절 엄청난 득점력을 뽐낸 드록바. [드록바 인스타그램]

드록바는 2012년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동점 골을 넣으면서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다. 모리뉴 감독은 “드록바와 함께라면 어떤 전쟁에도 나갈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37)은 “드록바의 몸은 그냥 바위다. 살짝 부딪혀도 나가떨어질 정도”라고 회상했다.

드록바는 2012년 이후 상하이(중국), 갈라타사라이(터키), 몬트리올(캐나다) 등을 거쳐 2017년 미국 피닉스 라이징 공동구단주 겸 선수로 뛰었다. 지난 9일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 대표로는 104경기에 출전해 65골을 터트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일본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17분 교체 출전해 2-1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드록바가 2005년 수단을 꺾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전권을 따낸 뒤 국민들에게 무릎 꿇고 호소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드록바는 “북부·남부·동부·서부에 사는 코트디부아르 국민 여러분, 우리는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뛴다면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용서하자.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 모습은 아프리카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드록바의 호소에 감명을 받은 정부군과 반군은 수년간 이어지던 내전을 중단하고 총부리를 거뒀다. 이는 2007년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드록바는 이후에도 직접 자선재단을 설립한 뒤 국제 사회에 종전을 호소했다. 펩시콜라 광고료로 받은 55억원을 고향의 병원 건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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