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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식 해법은 '정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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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월 한 달간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에서 판 차량은 모두 23만여 대.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에 이어 미국 내 판매 3위를 차지했다. 차는 잘 팔렸지만, 도요타의 미국 내 생산.판매법인을 총괄하는 북미도요타는 우울한 5월을 보냈다. 북미도요타의 오타카 히데아키(大高英昭.65) 사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여자 비서(42)는 오타카 사장이 자신에게 사적인 점심은 물론 식사 후 산책이나 출장에 동행할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비서는 성추행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다며 1억90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했다.

도요타 본사 경영진은 지난달 중순 비서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즉각 오타카 사장을 직위해제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그러곤 일주일 만에 그를 내쫓았다. 본사와 북미도요타 경영진은 미국 국민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미국 일간지 등에 사과 광고도 냈다. 위험 요인이 발생하면 즉각 조사하고 숨김없이 밝힌 뒤 용서를 구하는 게 도요타식 위기 해법이다. 10여 년 전 미쓰비시자동차가 미국에서 성추행 파문을 숨기다 더 큰 위기에 빠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요타는 2003년에도 이런 식의 위기 해법을 보여줬다. 당시 일본의 1급 자동차정비사 시험에서 도요타의 인재개발실 간부가 시험문제를 유출했다. 전년(2002년)에 경쟁사인 닛산보다 도요타의 합격률이 저조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해당 간부가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도요타는 즉각 관련 간부.임원의 사표를 받았다. 사건 발생 사흘 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 등 경영진이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이들은 "일본의 일등기업으로서 윤리의식도 일등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겸허히 반성한다"며 3개월분의 월급을 자진 반납했다. 큰 문제로 불거질 것 같던 부정행위는 이후 도요타 경영진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 이어졌고 판매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매출이나 순익 규모로 글로벌 기업에 버금가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윤리의식이나 위기관리 기법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올라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이 얼마나 될까? 가래보다는 호미로 막는 것이 훌륭한 해법임을 도요타는 보여주고 있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