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일상 속 ‘낯설게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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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최근 호주에서 온 외국인 가족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걸 따라다니며 촬영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내가 가끔 가던 음식점과 카페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장소들이지만 이들은 가게의 조그만 장식부터 메뉴판까지 모든 것 하나하나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엄청 아름답다”는 표현도 자주 썼다.

평소 예쁘거나 신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이들 덕분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또 무척이나 부러웠다. 저기에서 평소처럼 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 나도 저들만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든 노래를 듣든, 아니면 꼭 해야 하는 업무를 다소 진지하게 하는 중이라고 해도 얼마나 행복할까.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삶의 자세라는 게 바로 저런 것 아닐까.

하지만 여행에서가 아닌 이런 일상 속 ‘낯설게 보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게 분명하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려고 방문한 카페에서도 마음속에 주로 ‘감사함’보다 ‘불만’이 일렁이는 걸 보면 말이다. 자주 찾는 좋아하는 장소지만, 2층으로 올라가야 나오는 남자 화장실의 위치가 좀 짜증이 난다. 오늘따라 의자 등받이도 불편하게 느껴지고, 조명도 최소한 몇몇 자리는 좀 더 밝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 금방 다시 반성하며 피식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러다 계속 반성만 하면서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좋다. 그럼 반성만 할 게 아니라 ‘낯설게 보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하나씩 실천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있다. 최근 가입한 운동 동호회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의 얘기다. 불편한 것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말을 몰라 한국어 간판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불편하긴 한데, 간판에 쓰여 있는 한글을 보면 모양이 참 예쁘게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별다른 공감을 표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해 휴가 때 갔던 스위스에서 본 예쁜 설산과 호수들에 관해서 얘기했다.

다음번에는 내가 먼저 말해봐야겠다. “네 말을 듣고 한글 간판을 오랫동안 바라봤더니 글자가 정말 예쁘다는 것을 알게 돼 기분이 좋아졌다”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커피잔도 예쁘게 생겼고, 분위기도 좋으니 언제 시간 날 때 같이 한 번 가자”고.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