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병대 전 대법관, 피의자 신분 19일 검찰 소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박병대

박병대

재판거래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박병대(사진) 전 대법관이 오는 19일 오전 9시30분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약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맡으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에 관여하는 등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 혐의

전직 대법관 중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공개 소환되는 것은 박 전 대법관이 처음이다. 지난 7일 차한성 전 대법관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당시엔 비공개 소환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박 전 대법관에 이어 이번 달 내로 고영한 전 대법관을 소환할 계획이다. 관련자 조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은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사팀은 이날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키맨’으로 불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243쪽(범죄일람표 33쪽 포함) 분량의 공소장에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등 여덟 가지 혐의에 대한 범죄사실 30여 개를 담았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반헌법적 행위 중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한 행위를 뽑아내 기소했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의 주요 범죄 사실엔 ▶상고법원 추진 과정의 불법행위 ▶법원 안팎의 비판세력 탄압 ▶판사 비위 의혹 은폐·축소 등 부당한 조직 보호 등이 포함됐다.

검찰, 고영한 전 대법관도 이달 소환 방침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추진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시작이자 끝이란 평가가 나온다. 법원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종 수단을 동원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등 정책적 목표 달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했고 (이들의) 요청과 민원을 무분별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공소장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을 놓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정황도 담겼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주도한 당사자라는 점을 의식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12년 나온 대법원 판결(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에 청와대는 외교부에 “2016년 4~5월 위안부 관련 재단이 6월이면 설립되고 일본에서 약속한 대로 돈을 보낼 전망이니 그로부터 1~2개월 후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8월 말까지 끝내라”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외교부는 2016년 11월 “2012년 대법원 판결은 외교적·국제법적 문제점이 있다”는 참고인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2013년 이후 청와대와 외교부의 요청에 따라 강제징용과 관련한 대법원의 재상고심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데 관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임 전 차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는 상당 부분 인정했다. 다만 부적절한 일을 했을 수 있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재판거래에 대해선 “선고 결과에 따른 상황별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일 뿐 재판에 개입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임 전 차장 재판과 관련, 이번 사건을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적시 처리 사건’으로 지정할지 검토한 뒤 재판부 배당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배당은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판사들이 몸담고 있는 재판부를 제외한 곳에 추첨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내에선 “이 사건을 맡은 재판장은 판사 생활 중 최악의 사건을 맡게 될 것”이라는 자조섞인 예상도 나온다. “법원과 판사 품격에 맞지 않는 일을 했지만 불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법원 내 의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하기가 부담스러울 거란 예측에서다.

하지만 무죄를 선고하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거세질 거란 부담도 상당하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중앙지법 형사부장판사들은 솔직히 다른 법원으로 전출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