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서무상, 세계 챔피언 박영훈 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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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0기KT배왕위전'

<8강전 하이라이트>
○ . 박영훈 9단 ● . 서무상 6단

갑자기 형세가 이상해졌다. 백은 초반에 하변의 거대한 흑진을 일거에 괴멸시키면서 크게 앞서 나갔으나 몇 번의 가벼운 손찌검이 화근이 되었다. 한때의 영광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박영훈 9단은 어느 순간 상대를 가볍게 생각했다. 상대는 무명 기사고 형세는 화창한 봄날이어서 무심결에 얕보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경적(輕敵)'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경적필패(輕敵必敗)란 말은 삼척동자도 아는 초보적인 얘기지만 승부가 존재하는 한 경적의 실수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장면1(104~110)=백△로 대마를 완생시켜 후환을 없애자 서무상 6단은 지체 없이 흑▲로 좌변을 키운다. 이때를 기다려 박영훈 9단은 104로 뿌리째 움직이기 시작했다. 옥쇄를 각오한 승부수다. 승산은 희박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누울 곳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105, 비빌 언덕을 주지 않는 서무상의 응수가 실로 냉정하다. 106에는 107로 근거를 뺏는다. 밖으로 내모는 소리 없는 최강수.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는지 한번 달아나 보라고 한다.

타개의 달인으로 소문난 박영훈이지만 숨이 탁 막혀 온다. 날개가 없는 한 이 칙칙하고 깊숙한 흑진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다가 110으로 어정쩡하게 두었다.

장면2(111~117)=결과는 허무했다. 113으로 밭전자의 가운데를 째자 간단히 허리가 끊겼다. 117까지 꼬리만 살았을 뿐 몸통은 잡혔다. 승부는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세계대회 우승자 박영훈이 무명 기사 서무상에게 패배해 탈락하고 만 것이다. 161수 끝, 흑 불계승.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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