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꾼주미경의자일끝세상] 호나우지뉴와 선등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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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심이 월드컵에 쏠려 있으니 축구 얘기 하나 해야겠다. 독일 월드컵 우승후보 0순위, 브라질 선수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단연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다. 한 나라 출신에 이름도 비슷하고 출중한 재능을 지닌 것도 같은데 그 둘은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와 외인구단 FC 바르셀로나의 거리만큼이나 다르기도 하다. 골문을 향해 쇄도하는 호나우두가 돌진하는 코뿔소라면 상대 수비수를 제쳐나가는 호나우지뉴는 춤추는 나비였다. 뭘까, 그 차이는. 그건 그들의 표정이다. 누구나 웃지만 누구도 호나우지뉴 처럼 웃지는 못한다. 긴박감 넘치는 승부의 현장에서 잇몸을 활짝 드러낸 그의 웃음은 바로 여유가 아닐까?

자,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들이 축구의 리더라면 거친 바위길을 누비는 우리의 리더는 선등자다. 선등자는 자일을 매고 가장 먼저 바위를 오른다. 그는 붙어 있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급경사의 바위에서 오로지 자신의 손과 발로 오르고 또 오른다. 아차, 떨어졌을 때 그를 잡아주는 것은 밑에 있는 확보자와 그전에 자일을 걸어놓은 확보물(볼트.캠.너트 등)이다. 그 확보물에서 많이 오를수록 추락거리는 늘어난다. 선등자가 위에서 내려준 자일에 달려 있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도 없는 후등자와 달리 선등자는 많든 적든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등은 등반을 시작한 모든 사람의 꿈이다. 선등은 홀로,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다. 또한 선등은 팀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누구나 등반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선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재능과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특별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시작하고 1년 안에 선등을 못하면 영원히 못 한다." 그런가? 대개 그렇다. 어떤 분야에든 준비된 자가 있게 마련이다. 또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등을 못 할 사람은 없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가? 또한 대개 그렇다. 사람들이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는 등반 능력이기보다는 공포감이다. 등반을 목숨 걸고 할까? 아니다. 등반하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다. 목숨 거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다. 등반은 도박이 아니라 과학이다. 등반은 선등자와 후등자가 어울려 연출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등반이 갖고 있는 위험한 속성이 사람을 경직되게 만들기 쉽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쾌감 만점의 즐거운 레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수봉 남면슬랩을 선등하는 동료의 확보를 봐주었다. 그는 홀드도 없는 매끈한 슬랩(45~70도 경사의 반반한 바위면)을 멈칫멈칫 투덜거리면서도 슬립(미끄러짐) 한 번 없이 보기 좋게 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잘 갔느냐고 물으니 불쑥 튀어나오는 말에 그만 뒤집어졌다. "떨어지면 아프잖아!" 그렇지, 나로 말하자면 너무 진지하다. 내가 서면슬랩을 선등했을 때 이렇게 유쾌한 대답을 했을까? 매력 있는 선등자란 이런 거다. 관중도 없고 연봉도 없는 등반이 할수록 즐거운 것은 이런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호나우지뉴의 웃음이 생각난다. 호나우지뉴가 등반을 한다면? 등반 한번 재미있어질 거다.

주미경 등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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