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교류 "기대 크면 실망도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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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은 국내적 이유와 경제적 동기,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 등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소련의 새 한반도 정책에 호의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소련에서의 경제적 사업이 어렵다는 현실을 한국 기업인들이 일단 발견하게 되면 한국의 새로운 대소 접근 열기는 결국 시들어질지도 모른다』고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 전문 국제정치학자가 예견했다.
미외교관계 협의회(CFR) 연구위원이며 헌터대학 교수인 「도널드·자고리아」씨는 최근 발매되기 시작한 계간 외교 문제 전문잡지인 『포린 어페어스』 89년 최신호에 실린「소련의 동아시아 정책-새로운 시작」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그와 같이 예견했다.
「자고리아」교수는 한국의 유수한 기업들이 일본과 제휴하여 시베리아를 공동 개발할 것을 이미 추구하고 있으나 『미온적인 반응 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 『이러한 반응은 한국의 대소열기를 식히게 마련이며 더우기 서울은 모스크바의 대북한 영향력이 한정돼 있음을 곧 알게 될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데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경제적·지정학적 현실에 비춰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계속적인 이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바라볼 수 있는 최선의 성과는 주요 공산국들에 의한 과거의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것으로서 이는 물론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련의 새 한반도 정책은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를 증대시키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새로운 신축성을 보임으로써 남북한 가운데 「최선의 목」을 취하려는 새로운 게임이라고 분석하면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소련도 「사실상의 두개의 한국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4년 김일성의 방소 이후 소련이 최신형 지상공격기 SU-25기와 미그 29-기, SA-5지대공 미사일. 그리고 소련 이외의 지역에 배치된 레이다 경보장치로서는 최초의 것인 틴실드 고성능 조기 경보레이다 장치 등 새로운 군사장비를 제공한 것은 고성능 무기의 지원을 꺼려했던 70년대의 대북한 정책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지적, 그 때문에 북한은 자주적 외교정책의 목소리를 낮추고「고르바초프」공산당 서기장의 일반 정책 노선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의 방중에 의한 중소관계의 정상화가 이뤄진다 해도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상화는 아니므로 서방측이 이를 겁낼 필요는 없을 것이라면서 동아시아에서의 힘의 균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소련의 두 아시아 맹방인 북한과 베트남에는 중소 데탕트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 데탕트의 결과『북한과 베트남이 중소양국을 서로 대립시키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되며 그렇게되면 한국과 화해하라는 중소의 북한에 대한 압력과 중국 및 아세안 (동남아국가연합)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베트남에 대한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과 베트남은 그들의 과거 정책 중 일부를 재고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곧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있어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자고리아」교수는 결론지었다. 【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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