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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군인은 왜 죽음 앞에서도 용감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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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다시 도발하면 처절하게 응징하겠다." 1사단 북한 목함 지뢰도발 1주년 맞은 지난 2016년 작전지역에서 당시 수색팀장이던 정교성 중사가 당시 통신관 임무를 수행했던 이형민 하사 등 팀원과 함께 수색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중앙포토]

"적이 다시 도발하면 처절하게 응징하겠다." 1사단 북한 목함 지뢰도발 1주년 맞은 지난 2016년 작전지역에서 당시 수색팀장이던 정교성 중사가 당시 통신관 임무를 수행했던 이형민 하사 등 팀원과 함께 수색 훈련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중앙포토]

군인은 전쟁터에서 왜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눌까.
전방 GOP(일반전초)에서 군 복무을 했던 직장인 신 모씨는 “당시 총을 들고 북쪽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적과 왜 싸워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휴전선 너머 북한군도 같은 입장이 아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군 시절을 회상했다.

연평도 포격·지뢰도발, 물러선 군인 없어 #미군도 “전우애 때문에 싸웠다“고 증언 #1950년 해병대 같은 반 학생 전우로 뭉쳐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때 해병대 K9 자주포가 포화를 뚫고 나오고 있다. [사진 해병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때 해병대 K9 자주포가 포화를 뚫고 나오고 있다. [사진 해병대]

일각에선 “전쟁이 일어나면 나약한 병사들이 도망가기에 바쁘지 않을까”라면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군인은 당장 내일이라도 빗발치는 총탄 앞에서 목숨을 던질 각오를 갖고 있다. 지난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해병대원들은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는 데도 임무 수행에 충실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에선 참수리정 승조원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적과 싸웠다. 그 이유가 뭘까.

지난 2002년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격침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 53일 만에 해군 해난구조대(SSU)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참수리 357호는 선체 오른쪽 바닷물과 선체가 만나는 부분의 흘수선에 포탄 구멍(원내)이 있었으며, 선체 곳곳에 포탄 자국이 보였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02년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격침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 53일 만에 해군 해난구조대(SSU)에 의해 인양되고 있다. 참수리 357호는 선체 오른쪽 바닷물과 선체가 만나는 부분의 흘수선에 포탄 구멍(원내)이 있었으며, 선체 곳곳에 포탄 자국이 보였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미군에서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대다수 미군은 적개심보다는 전우애 때문에 총을 들고 싸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 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고(故) 서정우 하사는 휴가 출발을 위해 항구에서 대기하던 중 부대로 돌아오다가 전사했다. 그가 발길을 돌린 이유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해병대를 향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부대로 복귀하는 그의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함께 고생하던 전우 얼굴이 아니었을까.

1950년 제주도에서 출범했던 해병대도 유사한 사례다. 당시는 이미 낙동강까지 밀려나 부대를 창설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징집할 대상도 변변치 않은 상황이라 제주도에서 중학생 약 3000여 명을 모아 훈련을 마친 뒤 전장에 투입시켰다.

1950년 해병대에 입대하는 제주도 학도병 [사진 해병대]

1950년 해병대에 입대하는 제주도 학도병 [사진 해병대]

그러나 이처럼 급조했던 부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앞장섰고, 한국전쟁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 해병대가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들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같은 반ㆍ같은 학교 친구들이 모이다 보니 훈련기간은 짧았지만 이미 전우애가 마련돼 있었다. 옆집 친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데 비겁하게 뒤로 숨을 해병대원은 없었다. 한국전쟁 기간 학도병들이 남다르게 용감했던 이유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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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전문가들은 적에 대한 증오심도 중요하지만, 전우를 살리겠다는 전우애가 전투력 원천이 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해병대 자료를 보면 당시 참전했던 이서근 해병은 “제주도 고향에서 자랄 때부터 같이 뛰어 놀기도 했고,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다, 같은 날 같이 해병대에 입대하여, 같은 부대에 배속돼,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며 “친구들이 자기 눈앞에서 쓰러져 타오르는 복수심과 적개심이 만들어 졌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5년 GOP를 나선 뒤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지뢰가 터졌을 때도 현장에 있던 장병들은 뜨거운 전우애를 보여줬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에서 전투력 강화를 위해 전우애를 키우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병영문화 개선과 함께 군대 내 따돌림이나 폭행 근절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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