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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생각하다 … 그들은 왜 오늘도 남을 위해 목숨을 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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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119구조본부 대원이 라펠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 도중 아찔한 순간이 자주 있다. 구조 현장은 더 위험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뛰어내린다. “‘좀 더 빨리 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고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소방관·경찰관 등이다. 그들만 생명의 본능을 거스르는 게 아니다. 평범한 시민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왜 죽음을 무릅쓸 수 있을까. 특별하게 태어나서 그랬을까. 순국선열을 기리는 현충일을 맞아 그 답을 찾아봤다.

 2011년 1월 21일 소말리아 앞바다.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출하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개시 명령이 떨어졌다. 고속단정을 타고 삼호주얼리호에 접근하던 해군 특수전 여단(UDT/SEAL) 대원 중 하나가 침묵을 깼다. “부모님께 효도를 못한 게 아쉽다”며 한숨을 쉬었다. ‘치명적 인간 무기’가 되는 훈련을 받은 그들이지만 막상 두려웠던 것이다. 대부분의 대원들에겐 첫 실전이었다. 게다가 사흘 전 1차 작전 때엔 동료 세 명이 해적의 공격에 부상을 당했다. 배에 도착해 사다리를 걸고 진입한 순간 분위기는 달라졌다. 제일 먼저 갑판에 오른 김영민(가명) 상사는 그때를 기억했다. “총에 맞아 죽을 경우 전우들이 내 시체를 밟고서라도 작전이 성공하기만을 바랐다.” 결국 이들은 선원 12명을 모두 구출했다.

① 소방대원은 인명 구조에만 집중하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② ③ ⑤ 해군 특수전 여단(UDT/SEAL) 대원들이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심리·신체적 압박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⑤ 그 덕분에 2011년 해적의 총격을 뚫고 인질을 구출했다. [사진 해군·중앙119구조본부]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박민식(39) 소방장은 지금까지 11년간 구조 임무를 수행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화재 진압 현장에서 공기가 다 떨어졌거나, 수중 구조를 하다 공기가 간당간당한 경우가 있었다. 라펠(rappel) 중 로프가 끊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장에선 두렵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상사와 박 소방장은 임무 순간엔 공포가 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코앞에 위험이 닥치면 인간의 신체와 두뇌엔 엄청난 양의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신경을 흥분시켜 전력을 다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래서 임무 중 부상당한 걸 모르다 나중에 통증 때문에 알게 될 수도 있다.

 1980년 3월 30일 미국 비밀경호국(SS) 요원 티머시 매카시는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향해 총탄이 날아오자 자신의 몸으로 대통령을 덮었다. 그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매카시는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랬다”고 말했다. 경호요원은 대통령이 피격을 당하면 대신 총에 맞도록 훈련을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대통령 경호실 요원은 “오랜 시간 단계적으로 훈련을 실시한다. 근육이 기억하면 총격 순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74%가 총격전이 일어난 뒤 무의식적으로 훈련받은 대로 따랐다고 답했다(데이브 그로스먼, 『전투의 심리학』). 이 때문에 제복의 세계에선 반복 훈련이 강조된다.

 그렇다고 오랜 훈련이 영웅적인 행위 모두를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철로로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씨와 같은 경우는 어떨까.

 우선 인간은 생각만큼 이기적인 동물이 아닐 수도 있다. 2012년 캐나다고등연구원(CIFAR)의 연구에 따르면 두 살 미만의 유아를 관찰한 결과 과자를 받을 때보다 과자를 줄 때 더 행복했다. 또 아이의 행복감은 남에게서 받은 과자가 아니라 원래 갖고 있는 과자를 남에게 전달할 때 가장 높았다고 한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희생할 줄 아는 유전자가 면면히 내려온다는 추정도 있다.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선택(kin selection) 얘기다. ‘나는 희생하지만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친족이 대신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그 유전자를 후대로 물려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동물에게서도 희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부 아프리카의 땅굴 속에서 무리를 지어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가 그 하나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뱀과 같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번식을 하지 않는 개체들이 용감히 앞으로 나가 번식하는 개체 대신 잡아 먹힌다.

 그렇다고 인간이 단순히 유전자의 명령에만 따르는 건 아니다. 좀 더 복잡하다. 인간은 다른 이와 교감하고 남의 감정을 이해한다. 연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애인이 전기 충격을 받는 장면을 본 경우 통증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활성화한 것으로 보고됐다.

 남보다 좀 더 많이 공감하는 이가 분명히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콩팥을 기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편도체(amygdala)를 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 관찰했다. 편도체는 감정과 행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연구 결과 장기 기증자의 오른쪽 편도체 크기가 남들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두려움에 질린 사람의 표정을 봤을 때 편도체가 더욱 활성화했다.

 이게 전부일까. 또 다른 설명이 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선 극단적 이타주의(extreme altruism)란 개념을 내세운다. 행동경제학은 심리 실험·연구를 통해 인간 행동의 모델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극단적 이타주의는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카네기 메달 수상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카네기 메달은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한 의인에게 주어진다. 메달 수상자들은 “순식간에 생각할 겨를 없이 행동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극단적 이타주의는 기부와 같은 일상적 이타주의와 같은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평소 남을 돕는 게 이롭다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위험을 각오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군사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군대는 명령에 따른 복종과 희생정신을 강조한다. 그래서 강요·억압, 선전·선동에 의해 강제로 병사들을 죽음에 내몬다고 보는 견해가 나온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현대 민주 사회에선 자발적 충성심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세계적인 군사사(軍事史) 학자인 마틴 판 크레펠트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을 의지하고 있는 집단을 위해 싸운다. 협력하지 않으면 자신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소설 『삼총사』의 한 구절을 덧붙였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One for all, all for one).”

 이번 취재에 협조해준 학자들(‘도움말 주신 분’ 참조)은 자신의 전공 분야를 동원해 한참 설명한 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이런 이론도 있지만 희생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훌륭한 희생을 짧은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려니 양심의 가책이 든다”고 했다. 왜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앙119구조본부의 채정민(34) 소방교의 얘기에 단서가 있는 듯하다.

 “남들은 다 위험해서 나오는 현장에 우리는 들어간다. 두렵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에 진입한다. 그게 이유다. 다른 건 없다.”

[S BOX] 전우애 그리워하는 군인들

2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헨리 존슨과 윌리엄 셔민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명예훈장은 미군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훈장이다. 이미 고인이 된 두 사람은 1918년 십자포화에 갇힌 전우를 구한 공로를 이제야 인정받았다. 그들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초인적인 용기를 발휘했다.

 이처럼 전우애 또는 동료의식은 인간이 제 목숨을 걸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김영민 상사와 박민식 소방장은 모두 “바로 옆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임무가 아무리 위험해도 마음이 편안했다”는 데 동의했다. 마틴 판 크레펠트 텔아비브대 교수는 “전우애가 없다면 분명 병사 개인은 죽음을 피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언론인 서배스천 융거는 ‘레스트레포(2010)’와 ‘코렌갈(2014)’ 등 전쟁터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TED에서 이렇게 물었다. “군인들은 전쟁으로 고통받는다. 그러나 많은 군인이 전쟁을 그리워한다. 끔찍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살인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왜 그럴까?” 융거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건 전우애(brotherhood)”라고 자문자답했다.

  훈련이 힘들수록, 전쟁이 고통스러울수록 전우애는 더 단단해진다. 사회보다 훨씬 강한 결속과 유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얘기다.

글=이철재·곽재민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순)=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김용주 육사 심리경영학과 교수(대령), 라종철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 원장, 이진권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장진우 연세대 신경외과학교실 교수, 마틴 판 크레펠트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안보외교학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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