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제압문건’ 전 국정원 간부들에 실형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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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에서 ‘박원순 제압문건’ 작성·실행 등 야당 정치인과 진보 성향 연예인들에 대한 정치공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가정보원 간부 2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박원순 제압문건' 작성에 관여하는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각종 정치공작에서 핵심 역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이 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제압문건' 작성에 관여하는 등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각종 정치공작에서 핵심 역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이 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강성수)는 2일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원동(63) 전 국익정보국장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 신승균(59) 전 국익전략실장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구속기소됐다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았던 신 전 실장은 보석이 취소돼 다시 구속됐다.

재판부는 “박 전 국장은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합리적 이유나 근거없이 종북으로 규정했다”며 “직권을 남용해 직원에게 국정원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야당 정치인에 대한 온·오프라인 비난 활동에 깊게 관여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김미화·윤도현·김제동 등 연예인의 퇴출 활동도 지시했다”며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청해 해당 정치인·연예인들은 고통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박 전 국장은 이를 직원들에게 적극 지시하는 등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며 “그가 담당한 역할이 결코 미약하다고 볼 수 없는데 책임을 전면 회피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박 전 국장과 신 전 실장은 2011년 10월 박 시장이 당선된 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종북세력인 박원순에 대한 제압이 필요하다’고 지시하자, 박 시장을 비방하는 공작 계획을 담은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을 작성했다. 보수단체 동원 박 시장 규탄시위 개최, 언론 칼럼 게재 등의 공작 방안이 담긴 문건을 전달받은 국정원 심리전단은 온·오프라인에서 박 시장을 비방하는 활동을 했다.

이들은 또 방송인 김미화씨를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하차하도록 MBC 경영진에 요구하고, 방송인 김제동씨와 가수 윤도현씨 소속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국세청 조사국장에게 요구한 혐의도 받았다. 이후 김미화씨는 실제 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하게 됐지만, 김제동씨 등 소속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또 야권동향을 사찰해 여권의 선거대책 기획 등에 가담하고 전경련 등과 기업들에게 보수단체에 수십억원을 지원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받는다.

정치·사회 등 국내정보 담당 국정원 2차장 산하의 국익정보국장을 지낸 박 전 국장은 관련 첩보를 수집해 신 전 실장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날 신 전 실장도 박 전 국장에 앞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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