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KTX역 감사도 부실 … 철도시설공단 6개월 끌다가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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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해 건설한 ‘원주강릉선 KTX’ 역사 3곳(만종·횡성·평창역)의 부실공사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부실 감사’ 의혹이 나왔다. 건설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제 식구를 보호하기 위해 감사하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동영 의원실 감사 보고서 입수 #조사 마치고도 2개월 감감무소식 #공사 관리책임자는 별건 재판 중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실이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넘겨받은 감사 추진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공단은 자신들과 별도로 감사원이 올해 3월부터 감사를 시작한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6개월이나 지난 9월이 돼서야 자체감사 계획을 수립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8월 강원 횡성경찰서가 수사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공단에 감사 의뢰를 했다. 그러자 철도시설공단이 등에 떠밀리듯 감사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철도시설공단은 9월 12일부터 21일까지 2차례에 걸쳐 현장조사를 끝내놓고도 2개월 넘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않다가 며칠 전 감사 결과를 묻는 의원실에 뒤늦게 “2주 후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다. 의원실은 “고의로 감사를 지연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다만 철도시설공단은 일부 부실공사 사실(철골 자재에 볼트 구멍을 뚫을 때 날림으로 마감 등)을 포착했다는 의견을 의원실에 전달했다.

이와 별도로 의원실은 원주강릉선 KTX 6개 역사(강릉·진부·평창·둔내·횡성·만종역) 신축공사의 관리감독 책임자인 A씨가 지난 7월 다른 범죄(강릉역 앞에 설치된 올림픽 상징 조형물 공모 과정에서 뒷돈 수수)로 재판에 넘겨졌다고 밝혔다. 해당 조형물은 현재 철거 여부를 심의 중이다.

의원실은 “A씨 등이 부실공사를 묵인하는 대가로 부정을 저지른 게 아닌지 수사할 필요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경찰은 발주처 등에 ‘검은돈’이 흘러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망을 펼치고 있다. 한쪽에선 정부의 부실공사 여부 조사가 A씨의 관리 대상이던 6개 역사 전체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의원실은 “철도시설공단에 2013년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임직원 비리내역과 조치내역을 요구했지만, 철도시설공단은 A씨와 관련된 사항을 누락했다”며 “A씨를 왜 숨기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동영 의원은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철도시설공단이 A씨 등의 잘못이 드러날까봐 부실 감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부실 감사할 의도는 없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전문가를 투입해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해명했다. 앞서 의원실에 임직원 비리내역 등을 제출할 때 A씨 관련 부분을 누락한 것과 관련해선 “A씨가 퇴직자인데, 퇴직자들을 빼고 자료를 제출해서 그렇다. 이들을 포함해 다시 제출하겠다”고 했다.

한편 감사원은 원주강릉선 KTX 역사뿐만 아니라 평창 겨울올림픽 관련 건설사업 전반에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희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 정책국장은 “평창올림픽 관련 공사들은 전반적으로 계획이 수시로 바뀌면서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심했다. 부실공사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높은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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