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상실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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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을 당해본 사람은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의심하는 마음을 갖기 쉽다. 일단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고 나면 “그런 것이 아니다”는 상대의 설명을 듣고도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렵다.

비단 애인만이 아니다. “카풀이 도입되면 승객 대상 범죄가 늘어나는 등 장기적으로 시민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는 택시 기사들의 말도, “극히 일부의 비리들이 전체의 일인 것처럼 침소봉대(針小棒大)돼 유감”이라는 유치원 원장들의 설명도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게 된다. 아마 우리는 비슷한 배신을 많이 당했나 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 아니었던 경험이 적지 않게 쌓였나 보다.

며칠 전엔 유명 방송국 PD와 연예인이 언급된 지라시가 돌자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 이슈에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 누군가 손을 쓸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SNS에서 나왔다. 너무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일단 모든 걸 의심하며 사는 편을 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믿음 상실의 시대’다.

하지만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서도 믿음이 상실되는 걸 목격하는 건 뼈아프다. 최근 경찰은 서울 강서구에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살인마의 동생을 공범이 아니라고 밝혔다. 범행 당시 그가 피해자를 뒤에서 붙잡은 장면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다시 공범이 아니란 판단의 근거를 상세히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 처리를 서둘러 마치고 성가실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견(犬)찰’들이니까”라는 댓글이 포털 뉴스에서 많은 추천을 받았다.

공동체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신뢰 관계가 꼭 필요한 곳마저도 이렇게 무너지면 우리 모두는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 ‘상실된 믿음’이 주는 피해는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마음 놓고 보낼 유치원이 없고, 내가 당한 범죄를 믿고 신고할 만한 공권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믿음을 잃을 만한 실수를 했던 사람도, 배신당한 경험이 자꾸 떠올라 의심이 생기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신뢰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아무리 상실의 시대라고 해도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송우영 JTBC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