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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극장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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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

인천시 동구 송현동에는 280여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추억극장 미림’. 이름처럼 추억의 옛 영화를 상영하는 실버 전용 영화관이다.

이곳을 알게 된 건 2013년 10월쯤이다. “1957년 문을 열었지만, 대형 복합상영관에 밀려 폐관(2004년 7월)했던 미림극장이 인천시 최초의 실버 전용 극장으로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개관 당시 호기심에 가봤다. 55세 이상의 영화 관람료는 2000원. 이 기준에 맞지 않는 나는 7000원(현재는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을 내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다. 60~70대 어르신으로 꽉 찬 극장 안, 스크린의 큼직한 자막은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예전엔 키스 신은 제대로 못 봤어” “저런 장면이 있었나?” 등 곳곳에서 들려오는 어르신들의 추억담이 영화보다 흥미로웠다.

최근 접한 ‘추억극장 미림’의 소식은 안타까웠다. 재정 문제로 재개관 5년 만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라 2014년부터 인천시에서 매년 9000만~1억2000만원 정도를 지원받았는데 내년 4월부터는 이 지원이 중단된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재정 지원 업무 지침에 따라 최대 5년까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원의 영화 관람료와 매점 수익만으로는 건물 임대료는 물론 판권료나 영화관에서 일하는 60~70대 어르신 11명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영화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영화관 요금을 함부로 올릴 수 없다.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주머니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다른 실버 전용 영화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자체의 지원이 없다면 ‘추억극장 미림’처럼 폐관 위기에 몰린다. 한때 노인복지 바람을 타고 전국 곳곳에 들어섰던 실버 전용 영화관이 현재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 실버 전용 영화관은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다. 어르신들에게 매표소 관리 등 일자리도 제공하고 동아리 등 친목·취미 활동도 지원한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노인과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실버 전용 영화관을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선거철 정치인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가장 먼저 내놓는 공약 중 하나는 노인 복지 정책이다. 고령화 시대에 다양한 노인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기존 시설을 제대로 운영·관리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왜 모를까.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