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면접 뚫어야 취업 … 영국선 1300만원짜리 과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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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상하게 느껴졌고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금융사 1명 뽑는데 1만5000명 지원 #채용시 시간·비용 절감 위해 도입 #웹캠·휴대전화로 묻고 답하는 식 #일각 “기업들 편리함만 추구” 비판

미국 오하이오에 사는 사라(27)는 지난해 새 일자리를 구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지원한 회사 측의 요구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 대신 인공지능(AI)이 면접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당초 화상 통화 같은 면접을 예상했던 사라는 “대개 면접관을 만나면 긴장을 푸는 간단한 대화가 오가기도 하는데, 이번 면접은 화면에서 실무적인 질문이 나오면 곧바로 답하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사라가 참여한 면접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하이어 뷰(HireVue)라는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질문에 답변하는 지원자의 표정이나 언어 선택까지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한다. 사라는 입사에 성공해 현재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 중이라고 CNBC가 보도했다.

구직자들이 이젠 AI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영국 이브닝 스탠더드는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에서 일자리를 잡으려면 이젠 최고 수준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게 아니라 AI 면접을 뚫어야 한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골드만 삭스나 유니레버 등 상당수 기업들이 AI 면접을 도입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 자리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서다. 런던 금융가 한 회사에선 애널리스트 연수생 한 명을 뽑는데 1만5000명이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지원자의 서류를 일일이 살펴보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AI를 활용하면 서류 심사와 면접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들 회사가 사용하는 AI 면접 프로그램은 컴퓨터 웹캠이나 휴대전화 카메라를 통해 지원자에게 20분 가량 질문하고 답변 영상을 받는다. 구직자들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답변할 수 있고, 영상을 확인한 후 마음에 드는 것으로 등록할 수 있다.

AI는 지원자가 적어낸 자격 요건이 해당 기업이 원하는 수준에 합당한지를 포함해 눈동자 움직임이나 미소, 찡그림, 음성, 발언 패턴 등 25만개 정보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지원자와 탈락자를 솎아낸다.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의 큰 기업 500곳의 대다수도 채용 과정을 개선하려고 일종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채용 과정에 로봇 활용이 확산하는 것은 비용 절감 외에 선입견을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관련 업체들은 강조한다. AI 채용프로그램 업체인 마이어(Mya)의 그레이브스키는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출신 학교나 전 직장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AI는 배경을 보지 않고 누가 적극적인지, 누가 회사에 관심이 많은 지에만 주목한다”고 말했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회사 측이 자신의 이력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AI 면접에선 신속히 결과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AI 관문을 뚫기 위해 런던에선 ‘족집게 고액 과외’도 등장했다. 피니토라는 회사는 채용될 때까지 AI 면접 준비를 도와준다며 9000파운드(약 1300만원)를 받는다고 이브닝 스탠다드가 전했다. 재무, 홍보, 예술 등 직종에 맞게 면접 연습을 시켜주고 영상을 보며 약점을 찾아준다. 채용 산업의 규모만 2000억 달러(226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미국에선 지원자의 소셜 미디어를 분석해 해당 직종에 맞는지를 판단해주는 디지털 업체도 생겨났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내세운 기업들이 편리함만 추구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AI 면접에서 10차례 떨어진 뒤 런던 증권회사에 합격한 조시 폭은 “수만 명이 지원하는 금융회사로선 AI 면접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매우 우수한 인재들이 틈새로 미끄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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