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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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작들을 읽으면 미래의 한국 문학평론의 추이를 얼추 짐작하게 되는데, 좀 심란하다. 곁눈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심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보다는 한창 유행 중인 철학 개념들, 문화 이론의 용어들을 설익은 그대로 베끼는 데 더 열심이라는 얘기다.

사시로 한껏 벌어진 한쪽 눈으로 바깥에서 수입된 신묘한 개념들을 허겁지겁 삼키는 동안에, 다른 한쪽 눈으로는 작품을 건성건성 넘기면서 그저 '써먹을 수 있는' 대목들만 샘플링하거나 혹은 논리적이지도 못한 주의주장을 길게 늘어놓고는 작품 줄거리를 말미에 붙이고 잘 났다, 못 났다 품평한다.

그런데 비평은 그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비평은 창작의 영원한 공생식물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없으면 비평은 한 글자도 씌어질 수가 없다. '원론비평'이니 '계도비평'이니 하는 말이 있지만, 그런 고담준론도 우선은 작품을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쌓은 뒤에야 쓸모가 있을 것이다.

한동안 회자됐던 표현을 빌리자면 작품이 살아야 비평이 산다. 좀더 곡진하게 말하자. 작품을 살려야 비평이 산다. 그리고 작품을 살리려면 못 났든 잘 났든 애틋이 바라보고 공경히 대접하고 꼼꼼히 짚어야 하는 것이다.

심사자들의 손에 마지막으로 남게 된 강유정씨의 '소멸을 창조하는 역설적 사제의 글쓰기'와 류순태씨의 '바다의 아코디언, 그 새로운 길에서의 실재 찾기'는 작품을 정성스레 읽어내려고 애쓰는 품을 들인 글들이다.

강유정씨는 젊은 작가 천운영의 소설에 나타난 도착적 성욕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주되며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것은 비슷한 다른 작가들의 세계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섬세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반면 류순태씨는 김명인의 시가 펼치고 있는 새로움을 향한 노정에 동반하여, 그 모험이 남긴 사건들로서의 시 한편 한편을 반추하고 궁굴리면서 시인의 모험이 "생을 순간으로 만들어 내는 데서 역설적으로 영원을 찾는 일"이었음을 찾아내었다. 두 글 모두, 대상이 된 작품들을 암탉처럼 품고 지낸 시간이 많았음을 넉넉히 증명하고 있었다.

선택은 괴로운 형벌이었다. 아마도 류순태씨의 글에 낙점이 간 것은 씨의 글이 섬세한 글읽기라는 공유의 미덕 외에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한 가지란 미적인 것에 대한 체질적 감각을 가리키는데, 바다의 아코디언과 실제의 아코디언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정중앙에 완강히 머물러 있던 저울의 무게 중심을 슬그머니 기울게 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강유정씨에게도 그런 감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그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데 소홀하였다. 부디 이 지적이 씨에게 쓴 약이 되기를 바라며, 당선자 또한 쓸데없이 덧붙은 관념들을 덜어내는 일에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권영민.정과리(집필:정과리)

◇예심위원=장영우.하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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