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뒷돈 누가 댔는냐”가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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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경찰이 현대그룹노조원테러사건을 방조한 사실이 17일 국회진상조사위의 현지조사결과 드러남에 따라 이번사건의 주동자로 알려진 한유동전무 이상의 현대그룹고위간부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이는 한전무가 「순수한 구사충정」에서 독자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경찰이 한전무 개인을 위해 방조사실이 드러날 경우 직무유기죄 등의 신분상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범행을 묵인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또 테러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대그룹간부들이 울산시내 기관장들과 만나 수습대책을 논의해왔으며 특허 경찰이 이윤섭씨를 지난 8일 오후 검거해놓고도 하루 뒤인 9일 오후 검거했다고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이씨의 이날 행적 등 의문점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범행자금=한전무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난해 12월23일·지난 4일 및 7일 3차례에 걸쳐 1백만·2백만·1백만원씩 모두 4백만원의 범행자금을 이씨에게 제공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문제의 자금이 건네지는 3차례 시점은 현대중공업 노사분규가 갑자기 심각한 양상을 보일 때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게다가 이씨가 17일 국회진상위에서 한전무로부터 범행 전 자금으로 1천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해 앞뒤가 맞지 않고 있다.
구랍 21일, 지난해 4월 구속됐던 현대그룹의 「기피인물」권용목전현대엔진노조위원장이 정부의 「12·21사면조치」로 풀려나고 지난해연말 노무현민주당의원이 현대중공업에서 노조원들을 격려하는 강연회를 갖고 나자 이윤섭씨는 지난 4일 울산시내 S여관에 전화기3대를 설치, 지휘본부를 마련했으며 이날 두 번째 자금이 건네졌다.
한전무는 마지막으로 지난 6일 이원건씨가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고 이날 이위원장의 쌍둥이 형인 이형건전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이 반대파노조원 폭행사건으로 구속돼 7일 정몽준회장주제로 중역비상대책회의까지 열리자 이씨에게 최종자금을 제공했다.
특히 이윤섭씨는 경찰수사과정에서 『현대엔진과 현대중공업노사분규해결조건으로 6백만· 4백만원씩 받기로 했다』고 밝히고 한전무 역시 『이번일이 잘 해결됐으면 개인적으로 지출한 4백만원을 회사에서 받아낼 생각이였다』고 진술, 회사차원의 자금제공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 범인은닉=경찰은 18일 현재 이윤섭씨를 사건발생 이틀 뒤인 9일 오후1시30분 다이아몬드호텔 앞에서 검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 울산사무소가 17일 국회 진상조사위에 제출한 「현대폭력사건동향보고서」는 이씨가 하루 전인 8일 오후3시 경찰에 이미 검거됐다고 밝혔다.
경찰이 상부로부터 범인검거독촉을 받아가면서도 주범 이씨의 검거사실을 하루 동안 숨긴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경찰이 한전무를 검거한 10일 오후3시 곧바로 경찰서로 연행하지 않고 11일 오전5시까지 극비리에 울산관광호텔에 숨겼던 사실은 이들과 회사측이 사후대책을 논의할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관계기관대책회의=현대엔진 김형벽사장과 현대중공업도영회부사장이 곽만섭울산시장과 만나 사건수습책을 논의한 것은 사건직후인 8일 오후5시쯤.
그러나 곽울산시장은 이에 앞서 이날 오후1시 울산경찰서장실에서 노동부·안기부직원 등과 함께 만나대책회의를 가진 사실까지 있는데도 국회진상조사위에선 이 같은 사실을 숨긴 것으로 드러나 회사측과 관계기관이 이번사건을 축소조작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아무튼 이번 테러사건수사는 회사·공권력의 개입여부 등 숱한 의문을 안은 채 경찰의 손을 떠나 19일중으로 전담조사반까지 구성한 부산지검울산지청으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의문점=12일 국무총리실 치안종합대책반에 이어 15일 치안본부 감찰반이 현지에 내려와 조사를 했다.
이 조사 때 김상구 상북지서장은 번호판을 가린 차량검문·상황실보고 등 내용을 상세히 진술했다.
그러나 15일 치안본부 감찰반의 조사를 받은 후 지서로 돌아와 사건당일 차량검문·상황보고 등을 적어놓은 업무일지를 부하직원들을 시켜 칼로 도려내 없앴다.
사건의 심각성을 우려, 제2의 메모까지 남기고 사건전모를 상부에 보고한 김지서장이 왜 부하들을 시켜 사건당일 업무일지를 칼로 도려냈을까 하는 점은 또 하나의 의문점이 되고 있다.
상부의 입김에 의해서가아니라면 기자들에게 사건당일의 메모까지 남긴 김지서장이 사건이 드러난 마당에 업무일지를 굳이 없애버리라고 지시할 까닭이 없기 때문.
결국 이번사건은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과 방조가 사건을 부른 셈이 됐다. 김지서장이 지난 8일 새벽 차량검문을 하고 상황실장인 김룡갑정보과장에게 보고했을 때 김정보과장이 석남산장으로 가지 못하게 지시만 했더라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경찰서장과 정보과장은 방조여부를 부인하고 있으나 진상조사반은 지서장·정보과장·경찰서장 등이 사실을 알고도 방조했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미리 알아서 기는(?)」 수사를 해야 할 정도로 위세 당당한 「울산 현대왕국(?)」의 입김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의 전모가 남김없이 드러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울산=최천식·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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