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투자가 부진한데 무슨 수로 경제 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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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결국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이 문제였다. 그동안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경기가 연초에 반짝 살아날 듯하다가 고유가와 원화환율 하락의 외부 악재를 맞아 다시금 속절없이 고꾸라지고 있는 원인은 역시 투자 부진에 있었다. 정부 스스로도 지금의 경제상황을 평가하면서 설비투자의 부진을 경기회복의 최대 악재로 꼽았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을 유지했던 설비투자 증가율이 2001년 이후 5년간 평균 1.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991~96년의 연평균 11.1%에 비하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한국경제 전문가인 모건 스탠리의 엔디 시에 수석연구원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소비심리를 되살리려면 임금이 올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설비투자의 증가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과 원화 절상으로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한국 경제를 살리자면 설비투자의 확대가 관건이란 얘기다.

그러나 지난해 말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국내 설비투자는 올 1분기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말았다. 계절적 요인을 감안할 때 전분기보다 오히려 0.7%가 줄어든 것이다. 규제는 여전히 많고, 인건비와 땅값은 비싼 데다, 유가 상승과 원화 절상이 발목을 잡고 있으니 기업들이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정부의 점잖은 표현으로는 '기업의 신규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완충시켜줄 경제.사회적 여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란다. 바꿔 말하면 정부가 보기에도 이런 상황에선 투자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말끝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외치던 정부가 '기업 할 여건이 미흡해서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투자를 부추길 계획도, 그러겠다는 의지도 없으면서 무슨 수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