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 '악몽의 2회' … 시애틀전 1이닝에 8안타 8실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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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가벼운 1-0의 리드. 1회 말 수비 실책 때문에 맞았던 무사 2루의 위기를 또 한번 노련하게 벗어났다. 그래서 22일(한국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등판한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앞에는 시즌 3승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게 야구다. 박찬호의 2회 말 재앙도 그렇게 찾아왔다. 아무도 모르게.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툭'하고 떨어지듯 매리너스 타자들의 안타가 그렇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2회 말 칼 에버릿에게 첫 안타를 내준 공(투구 수 18구째)부터 불과 11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6개의 안타가 쏟아졌다. 뚝, 딱, 뚝, 딱, 뚝, 딱. 숨 돌릴 틈 없이 6개의 짧은 안타가 이어졌다. 구위가 크게 나쁘지 않았던 박찬호가 중간에 숨 돌릴 틈을 만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6개의 안타는 잘 맞은 안타 세 개, 빗맞은 안타 두 개, 번트 안타가 하나였다. 일곱 번째 타자가 올라와서야 아웃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 재앙의 대미에는 홈런이 기다리고 있었다. 1사 후 라울 이바네즈에게 3점 홈런, 2사 후 에버릿에게 다시 솔로 홈런. 박찬호의 2회 말은 8안타 8실점을 하고서야 끝났다.

"한 이닝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던져 구원투수들을 아끼는 것이었다. 완급 조절이 좋지 않았다."

박찬호는 3, 4, 5회를 무실점으로 버티는 등 6회 말 1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그동안 파드리스가 힘을 내 한때 7-8까지 따라붙었으나 박찬호는 6회 말에 2점을 더 내줬다. 파드리스는 결국 8-10으로 졌고 박찬호는 시즌 2패(2승)째를 떠안으며 평균자책점이 4.53으로 올라갔다. 박찬호의 10실점은 개인통산 한 경기 최다실점 타이기록(98년 콜로라도전)이었다.

"이런 날은 정말 상처가 크죠. 찬호는 지금까지 아주 잘 던졌는데…. 다시 일어날 겁니다. 찬호는 터프해요."-파드리스 에이스 제이크 피비.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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