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다 더 무선운 값싼 공포의 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미-리비아간의 화학무기 공장을 둘러싼 공방과 파리에서의 1백40개국 화학무기 국제회담은 가공할 화학전의 불안을 일깨워주고 있다.
화학무기가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세기말부터다.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26개국이 최초로 「질식및 유독가스의 발사」를 금지하는 조약이 채택됐다. 당시 미국은 조인을 거부했고 영국은 1907년에야 동의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독가스의 공격수단인 발사기의 사용금지등 부분적인 제약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1차대전때부터 대량의 화학무기가 동원돼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에서 40여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용된 독가스는 염소가스·포스겐·최루가스등으로 총 12만4천2백여t이 뿌려졌다.
전후 치명적 결과에 대한 반동으로 1925년 제네바에서 화학무기 금지조약이 32개국에 의해 비준됐다. 그러나 이 조약도 2차대전의 발발로 제 기능을 못했다.
2차대전이 끝난후 미소는 군축회담에 이를 포함해 장기간 회담을 벌였으나 뚜렷한 국제적 협약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만 72년에 74개국이 조인한 「생물학무기 금지조약」이 맺어졌을 뿐이다.
최근 화학무기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제3세계에서도 개발과 사용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대량의 고엽제를 사용해 생태계 파괴와 기형아 출산을 초래했다.
베트남은 캄푸치아 전선에서 화학무기를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라크는 88년 4월 쿠르드족에 독가스를 살포, 1차대전 이후 최악의 화학무기 공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화학무기는 선진국뿐아니라 개도국에도 매력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개발비용이 적게 들고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량 1t의 핵폭탄을 만들려면 1백만달러가 소요되나 사린이라는 GB가스는 1만달러밖에 들지않는다. 5t의 GB가스는 수소폭탄 20메가t의 위력을 갖는다.
화학무기의 전략적 의미는 미·소·나토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화학 공격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미국과 프랑스가 직접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적의 공격에 보복 할만한 화학전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3세계에서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선제공격용으로 쓰일수도 있다.
방호능력이 충분치 못한 제3세계에서는 화학무기의 선제공격은 상당한 피해를 준다. 2차대전이후 개발된 무기성 화학물질은 수백여종이나 실전에서 사용가능한 것은 10여종이다.

<장재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